"영화는 가까운 과거의 고고학이다" 라는, 촬영감독 마이클 채프먼의 말이 있다. 하나의 시대를 한 편의 영화로 감각해본다는 것은 꽤나 낭만적인 일이다. 1997년에 개봉한 <접속>은 20세기의 끝을 달리는 한국의 아날로그 감성을, 라디오와 PC통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영원히 봉인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봐도 독특한 영화이다. 한석규와 전도연 두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이지만, 정작 두 주인공이 대면하는 순간은 영화의 마지막에나 등장하니 말이다. 로맨스의 인장과도 같은 어떤 러브씬은 당연히 없을 뿐더러, 두 인물 간의 일말의 접촉도 없는 이상한 로맨스 영화이다.
<접속>은 에로스보단 필리아의 영화이다. 예컨대 <화양연화>가 순간의 접촉과 머뭇거림을 포착하며 절제의 에로스를 만들었다면 <접속>은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공감과 정을 쌓는 필리아의 영화이다.
21세기와는 다르게, 서로와 연락하기 위해선 유선의 불편함을 기다려야 했던 순간들마저 지금 시점에선 투박하지만 낭만적으로 보인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사라 본의 음악들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두 주인공의 시작을 예고하며 마냥 낙관적인 후반부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