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시점이 있고 '여자들'의 시점이 있다. 남자들은 잘 살고 있지만 소통을 하지 못한다. 반면 여자들은 잘 못 살고 있지만 정신적/신체적으로 소통을 한다. 남자들은 스스로의 아픔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는 데 주저하지만, 여자들은 서로를 이해한다. <강변호텔>의 영환은 홍상수의 필모 중 가장 처연한 남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의 김민희가 떠오를 정도다. 아직 이승에 남아있는 망자가 감각하는 '잊혀짐'이란 이런 형태인걸까. 영환은 자식들에게 대뜸 연락을 건네고 그들에게 자신의 아내 소식을 물어본다. 그러나 그의 자식들은 한참 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영환의 아내는 영환을 괴물이라 부르는 등, 영환은 세상에게 그 존재감을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영환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신이 아직 이승에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그에게서 멀어진다. 극의 초반 책에 사인을 해 달라 했지만 영영 영환을 찾아오지 않은 카페 직원의 경우도 그렇다.
한편 그렇기에 영환의 이름은 들어 봤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잘 알지는 못했던 상희 일행이 영환에겐 필요한 독자였던 것이다. 자신의 신작을 자신을 모르는 독자에게 들려준 후 영환은 스스로 죽음을 맞는다. 홍상수는 전작 <풀잎들>에서 쇼트에 생과 사를 부여했다. 이 무렵의 홍상수는 죽음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강변호텔>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주인공을 죽인다.
배우 유준상은 어떤 영화보다 어떤 드라마보다 홍상수의 세계 안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는 배우이다. 불혹의 소년. 그 이미지가 홍상수의 세계를 보다 인간적으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