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로 가의 세 사람이 등장한다. 아이는 군인에게 장난을 치고 집 문을 두드리고 도망가는 등 장난기 많은 모습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과 장난을 치기도 하며 음악을 즐기기도 한다. 32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시종 심각한 표정으로 과거의 흔적만을 거닐며 모국의 공기를 느끼지 못한다. 세 명의 스피로.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순수를 잃고 유희를 즐길 여력을 잃는다.
말하자면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은 <쇼생크 탈출>에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브룩스와 레드의 시간을 길게 늘인 이야기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숨결들, 익숙한 흔적들만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슬픔, 그래서 이 영화에는 클로즈업이 없다. 차마 앙겔로풀로스는 이 노인의 고독과 슬픔에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다는 듯 내내 거리감을 유지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세상에서 안개를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이지 않을까 싶다. 우아하고도 장중한 모습은 순도 100%의 고독 영화를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하지 않았나 싶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좋아하는가 누군가가 묻는다면 분명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허나 그의 영화는 쉽사리 '즐기기는' 어려운 것 같다. 때론 그의 영화를 보면서 고역에 가까울 정도의 지루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사실 아직도 그의 영화를 보기 전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아무 때나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 예술의 극점을 체험하는 기쁨은 그의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