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세상을 담았더니, 세상이 영화가 되었다.
우리는 직관적이고 말초적인 자극을 주는 것, 혹은 순간의 낭만을 돋구는 것들에만 심취해 있느라 정작 우리가 봐야 하는 것엔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삼촌을 만난 뒤 경찰서로 가게 된 어린 남매는 눈이 내리는 것을 보느라 정신이 없는 어른들을 지나쳐 경찰서 밖으로 달려나간다. 남매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경찰서에 데려간 경찰이지만 내리는 눈보다 그들에 대한 관심은 차순에 있다. 죽어가는 말이 끌려오지만 결혼식의 축제를 만끽하고 있는 하객들은 관심이 없다. 성년의 시선에선 자연스러울 수 있는 순간이지만 소년의 시선에선 잔인한 순간이다.
식당에 들어와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악사를 주인은 내쫓는다. 연극 배우들은 극장을 찾지 못해 끝내 의상들을 팔아치우기에 이른다. 바닷가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예술의 고상한 아름다움을 맘껏 향유하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한다. 예술은 방해받고 세상은 각박하다. 트럭 운전사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는 '볼라'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 신나는 대중음악을 즐기는 청년은 그녀에게 무관심하다. 관객은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우리들이 보고만 있는 것과, 정작 봐야 할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찰을 드러낸다.
남매는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독일에 가기 위해 역으로 달려간다. 이미 여러 차례 달려왔었던 그들이지만 출발하는 기차에 탑승하지 못한 채 매번 바라만 보던 그들이 하루는 기어이 그 기차에 탑승한다. 무임승차였던 그들은 곧 쫓겨난 채 외삼촌이 있는 공장에 향한다. 남매를 보호해주던 경찰은 그곳에서 남매의 아버지가 독일에 있다는 이야기는 거짓이며 둘은 사생아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러나 남매는 이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으며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여정을 계속한다.
차라리 우리는 믿고 싶다. 이 순수하고도 안쓰런 남매의 생각이 사실이길. 허나 한편으론 결과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의 엔딩이 현세일지 내세일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희망을 느꼈다면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