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 죽다>는 분명 아방가르드하면서 대담한 영화다. 인물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으며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을 방향으로 발산한다. 올바른 비교일지 모르겠지만 2025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서커스단 씬들은 기괴하고 초현실적이며 순수해보이기까지 한다.
미친 것 같이 거리를 떠도는 여인은 무엇인가? 그 공간은 주인공이 '회상'하는 과거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는 그 여인을 주인공의 어머니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보인다. 그녀는 '현재의 나'에게는 등장하지 않는다. 인력처럼 '과거의 나'와 계속해서 만나는 그녀. 주인공은 아버지가 없고 그녀는 남편이 없다. 그녀의 행적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벌였던 행적이라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끔찍한 학대를 당한 주인공은 가상의 한 여인을 만들어 어머니를 둘로 나눌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과거로 들어가는 문을 통해 스스로의 과거로 되돌아가는 주인공. 주인공은 '과거의 나'를 통해 어머니를 지우려 하지만 실패하며, 결국 스스로 그것을 시도하지만 역시 실패한다. 어머니와 나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의 등장인물, 즉 영화 속의 인물이다. 영화를 통해 극 중에서 어머니를 죽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문이 만약 타임머신이라면 실제로 어머니를 죽이는 것일 테고, 그저 과거를 회상하는 입구라면 기억 속에서 어머니를 지우는 행위일 테다. 그러나 그렇게도 미웠던 어머니는 죽이고/지울 수 없는 존재이며, '기억'과 '극'을 막론하고 어느 세계에서나 생생히 선명한 것이 모성이라는 것일 테다. 그래서 엔딩은 모성이라는 정서는 어느 울타리에 국한시킬 수 없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극이자 기억이라는 장치를 통해서라도 과거를 완벽히 청소할 수 없는 인간의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테다.
벽이 뒤로 무너지고, 1974년 현재로 전환된다. 극중극에서 극(영화 속 현실)으로의 전환. 아니 이 씬은 진정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도심 현장의 장면 그대로를 담은 듯. 말하자면 극중극에서 극으로 전환하고, 그 극을 다큐멘터리로 확장시키는 엔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셋 중 어떤 레이어에 걸쳐 있든, 그것 참 모자 관계라는 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전원에 죽다>는 메타 영화적으로 특색 있으며 예술가의 고뇌를 담은 이야기로서 흥미로운 지점을 제공한다. 객관화시키기 어려운 개인의 과거 기억을 이야기에 흥미롭게 담아낸 영화는 많지 않다. 더욱이 그 기억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이야기라니. 어쩌면 누구나 꿈 꾸어 봤을 환상적인 이야기이지만 달콤한 꿈 꾸기에 머물지 않고 전 인류적인 논의를 시공간을 초월해 들여놓는다. 여전히 가치 있으며 특별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