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감독들의 데뷔작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어떤 경우 작품에서 그 감독의 야심이 화염처럼 뿜어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 또 다른 경우는 데뷔작임에도 마치 거장의 품격이 느껴질 정도로 원숙하고 개성적인 연출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전자는 <추격자>이고 후자는 <위플래쉬>다. <애프터썬>은 아마도 <위플래쉬>와 같은 사례로 남을 것 같다. 이 작품은 도무지 데뷔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애프터썬>은 회귀의 영화다. 영화는 딸 소피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여행을 갔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마도 소피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한 것으로 보이고, 아버지는 소피에게 미안하고 사랑해서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 주려 한다. 이야기는 분명히 소피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그렇다면 소피의 시선이 닿지 못했을 어떤 순간들. 이를테면 화장실 안에서 상처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같은 장면들이 영화에 담긴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소피의 시선이 닿지 않은 숏들은 아마도 현재의 소피가 상상한 아버지의 모습일 것이다. 극의 중반, 잠깐 현실로 돌아온 카메라는 막 잠에서 깨어난 소피를 비춘다. 소피는 그날 생일이었다. 극중 아버지는 31살이고, 아마도 현재의 소피는 그때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인다. 내 기억 속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피는 내가 보지 못했던 지점의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고 나서면, 아마도 그때의 여행이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나는 마냥 즐겁고 행복했는데, 아버지는 그때 어땠던 걸까. 소피와 눈이 마주치지 않는 지점에서 아버지는 우울함에 휩쌓여 있었다. 분노를 참지 못하기도 하며 마냥 울기도 한다. 소피는 아버지가 그때 슬프고 우울했으리라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애프터썬>은 액자(구조)를 만들고 그 액자를 영원히 닫지 못하는 영화다.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떠오르기도 하는 지점이다. 아버지의 카메라는 소피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패닝하여 소피가 보는 스크린을 비추더니, 다시 패닝해 어른의 모습인 소피를 비춘다. 이제 '아버지'의 이야기는 소피가 이해한 것이 다이며, 이제 아버지에 대해 소피와 관객이 알 것은 더 없는 것일까. 이제 아버지의 이야기는 완결된 것일까. 그러나 그 지점에서, 카메라는 다시 패닝하여 다시금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아버지는카메라 앞에서 뒤돌아 망망한 저 문의 너머로 떠나간다. 액자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영원히 미결인 상태로 끝나는 것이다. 이쯤이면 기억을 더듬고 창의력을 발휘해 아버지를 이해했다 느꼈지만, "과연 그럴까?" 라며 떠나는 아버지. 우리는 아버지를 영원히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