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4시간에 육박하지만, 어떤 씬 하나도 허투루 사용되지 않았을 만큼 그 밀도가 엄청나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영화가 어떻게 개인과 세상, 관계와 세태를 담을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영화이며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가 걸어갈 수 있는 한계의 지점을 정직하게 깨달은, 혹자의 말대로 한 편의 영화가 꿈꿀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고령가>는 분명 배경지식이 필요한 영화이다. 국공내전과 2.28 사건, 외성인과 본성인의 차이와 두 집단의 갈등에 대해 가볍게는 알고 있는 것이 이 영화를 보다 온전히 받아들이는 길이라 생각한다.
비정한 세상 속 폭력에 잠식된 세태는 비단 '어른들' 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듯 시종 펜 대신 칼과 방망이를 드는 주인공을 포함한 어린 남학생들, 세상에 이용당하고 세상을 이용해야만 하는 여학생, 신념과 소신을 가졌었지만 국가의 비극적인 폭압에 산화되는 주인공의 아버지와 아마도 그 시대 대만의 어른들. 대만 현대사의 비극들은 이렇듯 보다 많은 이들에게 비극을 안겨다 주었다.
주인공 샤오쓰는 때로는 관찰자로서 때로는 한복판에 있는 경험자로서 이 모든 격동을 마주한다. 이 비정하고 불합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했는지 보여준다. 또한 샤오쓰보다 먼저 세상의 먼지를 마셨기에 세상을 보다 영리하게 이용하며 살아가는 밍과 본인이 세상에 졌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혹은 못하는) 샤오쓰를 대비시키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관객에게 생각해보게 만든다.
흔히 말하는 '리얼리즘 영화' 이외에도 전쟁 영화, 홀로코스트 영화에선 항상, 영화가 현실을 얼만큼 재현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재현해도 되는가? 라는 고민과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다큐멘터리 같은 이외의 형식이 아닌 이상) 결론적으로 생각하자면 영화라는 매체는 세상을 문자 그대로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사각의 프레임 안에 담겨 있는 것들만 볼 수 있으며 감독의 주관과 개성에 따라 현실은 영화 안에서 얼마든지 왜곡이 가능할 것이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를 깨닫고 '쓸데없이' 세상을 온전히 재현하려 애쓰지 않는다. 이건 영화일 뿐이라고, 우리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마주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어둠 속에서 손전등이 비추는 일부의 공간처럼 지극히 부분의 것들만 밝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고.
영화의 후반 샤오쓰가 영화 감독에게 '진짜와 가짜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네가 무엇을 찍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고' 라고 일갈했듯, 전능한 태도와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보며 어설프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유수의 감독들이 가지는 설익은 마음가짐을 감독은 경계한다.
어둡고 억울한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며 고작 한 편의 영화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지만,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로 현실을 비추고 타인에게 공감하고 이해한다면 세상은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또한 그래도 제법 살아갈 만한 인생이지 않을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지극히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