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말The Turin Horse

2011 · 벨라 타르,아그네스 흐라니츠키 · 헝가리, 스위스, 프랑스, 독일, 미국
토리노의 말 포스터
155분 · 드라마 · 15세 이상 · 출연 Derzsi János, Erika Bók, Mihály Kormos, Kovács Lajos · 음악 Mihály Víg · 촬영 Fred Kele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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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서 마부와 딸, 늙은 말이 함께 산다. 거센 폭풍이 부는 가운데 되풀이되던 단조로운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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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도망칠 수 없음에 좌절하게 되는 영원한 어둠의 세계

죽어가는 것과 쇠락하는 것을 응시하면서도 거기에서 생의 기운을 건져내는 감독이 있고, 분명 살아있는 생명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거기에서 죽음의 뉘앙스를 발견해 영화에 실어내는 감독이 있다. 나에게 있어 전자의 경우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였다. 그리고 후자의 대표적인 감독은, 나에게 벨라 타르처럼 보인다.

영화의 오프닝은 말과 그 말을 탄 마부의 장면이다. 말의 눈앞에 있는 흑백의 카메라는 역동적으로 휘날리는 말의 갈기와 몸짓을 담는다. 마부는 그 뒤에서 열심히 채찍질을 한다. 분명한 생(生)의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생기가 아니다. 피곤에 지친 존재들의 모습과, 간신히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존재의 모습. 이것은 생명(이 있는 존재들)의 장면이지만 죽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내내 집 안에서만 진행되는 6일간의 여정과는 분리되어 있는 프롤로그의 이 장면이야말로, 앞으로의 140여분에 대한 효율적인 요약이다.

프롤로그의 장면에서 첫째 날의 이야기는 곧바로 이어진다. 마부인 늙은 남자는 폭풍을 뚫고 말을 이끌며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선 한 젊은 여성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말을 인계받아 헛간에 들여보내며, 마차를 창고에 주차한 뒤 문을 닫는다. 바람은 지나치게 강하게 불어 그녀의 걸음은 힘겨워만 보인다. 여성은 노인의 옷을 벗겨 주고 갈아입혀준다. 영화는 말이 없다. 그들이 무슨 관계인 것일까? 부녀인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이 연인이지 말란 법은 없고, 그들이 주종관계이지 말란 법도 없다. 이때까지는 그렇다. 영화에서 둘의 관계가 명확히 규정되는 순간, 곧 여성이 노인을 아빠라고 칭하는 부분은 러닝타임의 28분에 다다른 뒤다. 이 지점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느껴진다. 둘의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적 약속을 유예시킴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서 어떤 정서적인 교감이나 맥락을 읽을 수 없고, 그저 행동과 행동이 이어지는 건조한 일련의 과정들만을 관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첫째 날부터, 관객에게도 무력감이 드리워진다.

<토리노의 말>의 흥미로운 것은 인간 시선 이상의 숏이 없다는 것이다. <토리노의 말>은 하늘을 부정하고, 인간 이외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 영화는 신을 부정하는 영화라고 말해도 같은 말일 것이다. 영화의 앵글은 미디엄-로우 뿐이다. 하이앵글은 없다. 신의 초월적인 시선은 없는 것이다. 땅에서 올려다보는 한은 있어도 말이다. 건조한 톤으로 층층히 쌓아올린 듯한 질감의 흑백 영상은 매 순간 위태롭고 무거우며 거칠다. <토리노의 말>은 가감 없이 인생의 밑낯의 고통을 포착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인 첫째 날과 여섯 째 날을 제외한 날들에선 매일같이 새로운 고난이 닥친다. 둘째 날부터 그들의 말이 곡기를 끊고 움직이지도 않으려 해 그들은 사실상 집에 갇히게 되고, 셋째 날엔 불청객이 그들의 집 앞에 찾아 와 정신을 흐트려놓고, 넷째 날엔 우물이 말라 버리며, 다섯 째 날엔 불이 붙지 않는 초현실적인 재앙이 닥친다. 도대체 왜 이런 부조리한 비극이 매일같이 일어나는지, 도대체 왜 이들에게만 이런 고난이 닥치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두 주인공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토리노의 말>이 비극 이상의 비극인 이유가 여기 있다. <토리노의 말>이 절망적인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생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편함 앞에서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생을 살려고 한다. 왜 우리에게만 이러냐고 주저앉아 엉엉 울지도 않고, 살을 에는 듯한 폭풍 앞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스스로가 하루 중 해야 할 일들을 동형반복한다. 벨라 타르가 지독한 것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려는 그러한 과정 자체를 고통이자 좌절이며 비극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비극 앞에서 인물들이 고통을 느끼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였다면 되려 영화가 말하는 비극은 몰개성하며 얕은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저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려 하는 인물들만을 나지막히 보여주기에, 인간의 발버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초월적인 비극이 그들을 서서히 덮을 때의 영화의 비극성은 오히려 심화되며, 그래서 이 영화는 영원한 어둠을 얻는다.

물이 사라진 이 곳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기어이 집을 떠나려 하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도 모를 무언가 때문에 멀리 가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다시 집에 이끌려 오고, 도대체 왜 불이 붙지 않는지도 모르는 집 안에서 그저 무력히 이 밤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잠에 들려 애쓴다. 불과 물이 없어 유일한 식량인 감자를 날로 먹어야 할 때, 한 명은 억지로 먹고 한 명은 끝내 입에 넣지 못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 처음으로 행동을 망설이는 그 순간, 아마도 처음으로 희망을 상실했을 그 순간부터 인간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에 가슴 가득히 절망하게 된다.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지도
「살아 있는 것에서 죽음을, 폐허에서 생명을」 지도›「사건이 비운 자리에 남는 것」 지도›「뺄셈의 예술 2」 지도›
사람
이 감독을 더 보고 싶어1편›
벨라 타르,아그네스 흐라니츠키
소재
사색적인 영화4편›
슬로 시네마·느린 영화6편›
일상을 담은 영화10편›
허무를 다룬 영화가 궁금해13편›
철학적인 영화가 궁금해17편›
농장이 배경인 영화23편›
독립영화를 더 보고 싶어24편›
말이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36편›
시골이 배경인 영화가 궁금해48편›
아버지와 딸 이야기가 좋았어61편›
동물이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75편›
흑백 영화를 더 보고 싶어114편›
음악·촬영
음악 · Mihály Víg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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