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어져 있는 새들과 그들을 주관하던 인간이 반대로 새장에 갇히게 되고 새들이 그들을 주관하게 되는 <새>의 표면적인 이야기에서 히치콕은 혼돈과 전복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새>의 또다른 구석에선 가족 제도의 혼돈과 회귀에 대한 말을 하고 있다.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 가족을 잃기 싫은 사람, 유사 가족을 보여주는 사람 등.
미첼을 놀래켜주려는 의도가 있지만 구태여 애써 힘든 행동들을 하는 멜라니. 로맨스의 서사를 만드는 듯한 행적이지만 한편으론 보데가 만이라는 공간의 초월적인 힘이 멜라니를 끌어들이는 이야기라고까지 보고 싶다.
정적을 담은 유령의 도시와도 같은 공간, 그 정적을 깨는 새들의 습격. <새>는 서로 다른 둘을 충돌시키며 전진하는 영화다. 정적과 소음, 새와 인간, 보이지 않는 서스펜스와 보이는 공포 같은 것들.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이웃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적고, 외부인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이 고립된 마을. 식당에서 이 모든 소동이 멜라니 당신 때문이라 여기는 주민들의 광기는 소통이 거세되고 혼돈이 산재한 마을을 조명하는 하나의 사회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하며, 새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시퀀스와 연결하자면 인간들의 참담한 어리석음을 한탄하는 전능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혹자는 <새>의 이야기가 자유로운 여성이었던 주인공 멜라니가 전통적인 가족 집단의 형태로 귀향하는, 따라서 사뭇 퇴행적이고 고루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영화 속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가족은 패배자가 된 채로 집에서 도망한다. 말하자면, 새롭게 만들어졌거나 관계를 회복한 가족 구성원이 위기를 극복해 집으로 돌아오는 미국식 가족주의 결말과 정반대의 이야기인 셈이다. 사뭇 퇴행적인 방향성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그 방향성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승리를 가져다주진 않는다. <새>는 무한히 잔혹하고 절망적인 종의 패배이자 신뢰와 소통이 고립된 현대 사회의 패배이다.
2022.5.16 2번째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