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금기로 가득찬 범죄심리학 실험실.
인간의 심리를 소름끼치도록 놀랍게 통찰하는 하네케 감독은 영화 내내 극도의 불쾌함과 거슬림을 유발해 우리의 감정의 날을 서게 한다.
특히 하나의 롱테이크 안에서 감정의 격랑을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한데, 이는 전에 봤던 <피아니스트>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었다.
영화 중반, 영원처럼 지속되는 롱테이크의 순간.
역동적인 폭력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지루함을 느꼈던 그 순간. 고작 이게 끝인가 하고 속으로 물었던 바로 그 순간은 아마도 하네케가 관객에게서 포착하고 싶었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가해자들의 폭력은 여러 번이지만 다소 심심하게 표현된 반면,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을 시도하는 순간의 표현은 의도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는 동시에, 관객을 조롱하듯 영상을 되감아버려(!!!)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했던 우리에게 중지(ㅗ)를 날린다.
폭력을 보며 불쾌함을 느꼈던 관객이 역설적으로 폭력으로 인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하는 그 순간의 마음을, 하네케는 간파하며 비틀어 우리에게 되묻는다.
아직도 폭력을 즐길 것인지.
다만, 불쾌의 정서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날리는 감독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전능한 신의 위치로 관객을 능욕하면서까지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비난하는 감독의 일방적인 시선에 나는 어디까지 동조해야 하는진 잘 모르겠다.
나는 타란티노 영화가 너무 재밌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