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스 폰 트리에라는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넘치는 천재성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는 항상 수많은 상징과 떡밥이 가득하지만, 한편으론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장르적인 특성과 내러티브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될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표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인, 사이코패스의 심리를 이렇게 도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표현한 영화를 나는 본 기억이 없다. 그렇기에 먼저 감탄을 느꼈다. 주인공의 변명과 궤변을 1차적으로 듣는 관객은 우리가 다른 영화에서 기계적으로 행했던, 주인공에게로의 '몰입'에서 지속적으로 튕겨져 나간다. 관객은 잭을 관찰하며 그저 혀를 내두르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관객은 두 가지의 분노를 가진다. 첫째론 잭이 벌이는 엽기적인 행동(살인과 궤변), 둘째론 잭을 잡을 수 없으며 잡으려 하지도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라스 폰 트리에 스스로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투영한 결과물이다. 트리에는 작중 등장하는 주인공 잭의 입을 빌려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작법을 설명한다.
"미화가 작품의 격을 떨어뜨린다면 반대로 파괴와 해체가 예술을 창조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트리에의 영화들은 항상 평단에 강력한 호불호를 불러일으키며, 그의 영화를 두곤 매번 윤리와 도덕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다.
순교인가 학대인가?
재해석인가 신성모독인가?
한편으론 트리에 역시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자극적인 작법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고찰하고 있는 듯 하다. 영화의 라스트 숏을 상기한다면, 결국 트리에는 잭을 지옥으로 보내며 감독 자신이 만드는 미학의 대가에 대한 부분적인 책임을 지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허나 동시에 트리에는 자신이 스스로 지옥행을 택하면서, 자신을 향한 수많은 비난과 논쟁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자신은 끝까지 스스로의 미학을 고수할 것을 공표하는 출사표로도 이 라스트 숏을 해석할 수 있다. 라스 폰 트리에는 지옥불에 떨어질지언정 자신이 가는 방법을 꺾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라스 폰 트리에 자신을 향한 자조인 동시에 다시 스스로를 다그치는 채찍질이다. 혹여 차기작이 만들어진다면 트리에는 다시금 도발적이고 저돌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많은 영화들은 현실을 통찰하는 척 하면서 현실을 미화한다. 트리에는 현실을 미화시키지 않고 불편한 현실을 들춰낸다. 세상의 한편에선 아직 이러한 감독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