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에는 그의 수많은 영화에서 여성 서사의 구조를 설정했다. 남자만 말하는 것을 허용하는 남성우월주의적 폐쇄성이 가득한 사회를 무대로 삼으며, 주인공 베스를 마리아를 연상케 하는 성녀의 위치로 설정한다. 주인공은 항상 약자의 위치이지만 수동적인 마리오네트의 입장이 아닌 끊임없이 주체적인 행동을 가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구태여 소환하자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여성은 숭고한 성녀의 이미지로 자주 그려진다. 그 자체로 성스러운 가치를 대표하기에 아름답지만 이러한 모티브가 언뜻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고루한 설정으로도 느껴져 고개가 갸웃해지는 지점도 존재했다.
트리에의 영화에서 성녀의 아가페는 신성한 가치를 대표하는 한편 현세에서 그 가치가 발현되는 과정에서의 고난과 역경이 동시에 존재하는 관념으로 묘사된다.
그렇기에 영화는 두 가지의 시선을 내내 교차시킨다. 베스의 일련의 행동들이 진정 초월적인 믿음인지 그저 정신의 착란으로 인한 안타까운 망상일지.
영화는 나름의 답을 내린 듯이 보여진다. 영화는 교리와 규범이라는 미명 아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돌보지 않으며 저주를 일삼는 '남성' 종교인들의 위선을 조소한다. 또한 두 번의 기적과 종소리를 통해 순수한 사랑을 향한 존경을 바치는 입장을 내린 듯이 보여진다.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그 미묘한 마스크와 눈빛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 캐릭터의 입체감을 한층 더한 듯한 퍼포먼스는 분명 배우 스스로의 힘이다.
에밀리 왓슨의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데뷔작인 것임은 이전에 몰랐었기에 더욱 놀라우며 여전히 인상적이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에서 배우들은 항상 경력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는 것 같다.
2021.5.15 2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