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화자인 조는 자신의 이야기를 순진과 순수한 태도로 풀어내기 시작하지만 청자인 셀리그만의 이성적인 척 하는 스탠스에, 점차 그 순수한 태도가 자신의 일련의 과정에 대한 유해한 과시로 변해간다.
영화의 청자인 셀리그만은 화자의 이야기를 자신의 지식들을 동원해 이해하며, 이성적으로 재해석한다. 영화의 마지막, 셀리그만의 이러한 행동들은 고작 저열한 욕구의 배설을 위한 과정이었음이 드러난다.
두 남녀는 서로를 향한 대화에서 각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은연중에 상대방을 향한 과시를 통해 우월감을 형성한다. 사람들의 많은 대화는 거짓된 공감과 허황된 소통을 통해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며, 라스 폰 트리에는 이러한 그릇된 관계 맺기에 염증을 느끼는 듯 하다.
볼륨 1은 꽤나 웃긴 요소가 많았었는데, 볼륨 2는 다시 우울한 정서의 트리에로 돌아왔다.
이 영화 역시 볼륨 1과 마찬가지로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오마주가 넘친다. 오프닝에서부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중부양'의 모티브가 등장한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지만 이는 또한 예수의 '변화산의 기적' 모티브를 냉소적으로 비꼰 방식으로 드러난다. 극의 청자인 셀리그먼의 집 벽에는 '루블료프 풍으로 복제한' 이콘이 걸려 있어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환기한다.
예수가 붙잡힌 이후 채찍으로 고문당한 이야기를 주인공의 SM 경험과 병렬하는 시퀀스는 도발적인 신성모독이며 담력 있는 교리 비틀기로 읽힌다. 직전 등장하는 거울의 사담과 함께 챕터 7의 제목은 대놓고 'The Mirror'이며 주인공이 산에 올라가 마주하는 나무의 형상은 <희생>을 상징하는 죽은 나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볼륨 2의 엔딩 장면은 성선설을 믿는 것처럼 보이는 타르코프스키를 비꼬는 듯한 성'성'설의 주제로 귀결된다.
결말의 메시지에는 공감하지만, 굳이 이렇게 툭 끊기듯 도식적으로 만들어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답지 않게 훈훈하게 가길래 어쩐지 싶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간편하게 이뤄지는 역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