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나는 이러한 가벼운 류의 영화를 선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무언가에 실패해서) 가벼워진’ 영화를 ‘가벼움(그 자체를 매력으로 내세우는)’ 영화보다 더 불호하기는 한다. 아마 본작은 후자에 속할 텐데, 사실 이런 영화들 역시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다. 이 영화를 이제서야 본 까닭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인스포팅>은 분명 자신만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데에는 성공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기묘하다. 넘쳐흐르는데 동시에 무기력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데 어딘가 철저히 방치되어 있다. 관조의 시선과 동정의 시선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참 쪽팔리고 무능해 보이는 주인공들. 막무가내로 살아가지만 가장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결국엔 방향조차 없다. 이 영화의 솔직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들을 미화하지도, 단죄하지도 않는다. 동정심과 불쌍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흥미 요소이며, 동시에 이 영화가 끝까지 붙잡고 가는 정서다.
대니 보일은 콜라주의 감성, 혹은 키치한 연출의 대가다. 더럽게 창의적인 장면, 더럽게 끝내주는 장면들이 쉼 없이 나열된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 변기 안으로 잠수하는 장면이나, “우리 다 같이 각자의 삶을 망가뜨리기로 합의했다.” 같은 대사를 겁 없이 던지는 선택들. 광각 촬영과 숏과 숏의 충돌을 야기하는 쉴 틈 없는 편집은 이 인물들의 삶 자체처럼 난폭하고 무질서하다.
특히 렌톤의 금단 증세를 묘사하는 연출은 창의적이라는 표현을 한참 넘어선다. 뒤틀리는 공간과 초현실적 이미지들의 디자인은 아주 새롭다기보다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들이지만, 그것을 어디까지 밀어붙이느냐의 문제에서 이 영화는 탁월하다. 관객을 어느 지점까지 쥐고 흔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선택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현대의 창의성이란 결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얼마나 과감하게 밀어붙이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완 맥그리거에 대한 호감 역시 이 영화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의 다재다능함 때문이다. 최고로 우아한 인물과 최고로 궁상맞은 인간을 모두 소화할 수 있고, 가장 판타지적인 영화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영화에서도 어색함이 없다. 매우 남성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벨벳 골드마인>에서처럼 중성적인 얼굴 또한 동시에 지닌다. 그야말로 카멜레온 같은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