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만 보아도 느껴지는 상당한 수준의 제작비. 고증에 있어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분별하긴 어렵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삼든 결국은 ‘창작’이라는 과정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고증상의 오류가 많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곳이 실제로 있었으리라" 믿게 만드는 몰입감은 분명 대단하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대규모의 엑스트라로 인한 박력은 정말 대단하다. 고어함과 스케일로 밀어붙이는 전투 장면엔 원시적인 강렬함이 있고, 넓은 로케이션이나 백파이프의 음색 등 시각적, 청각적 요소들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런 웅장함 속에서도 멜 깁슨 특유의 '지레 감동하는' 연출은 여전히 거슬린다. 관객들이 감정에 젖을 틈도 없이 미리 연주되는 감상적인 음악들, 마치 스스로 감동한 듯한 지나치게 감정적인 연출들. 감성의 선두주자라도 되는 듯한 그의 방식은 매번 피로하다.
멜 깁슨은 어딘가 원시 혹은 야만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동경은 종종 ‘강렬함’을 추구하는 방식으로만 발현되고, 그로 인해 캐릭터들은 생명력을 얻기보다는 일차원적인 상징으로 축소된다. 실제로 <브레이브하트>의 인물들은 전반적으로 심히 단조롭고 일방향적이다. 런던의 롱생크는 단순무식한 악역이며, 수십 년은 후퇴한 감성처럼 느껴지는 이자벨 공주라는 캐릭터는 도대체 무엇에 가치를 두고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아름답기만 한 채 구태의연한 목각인형이다.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에서 그런 인물 구성이 강력한 선악 구도를 형성하기엔 유리할지 몰라도, 결국 그 이상을 넘어서는 복합성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 단조로움 속에서도 순간적인 감정 폭발을 연출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그 감정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월레스가 리더로 추대되는 과정 역시 지나치게 필연적으로 묘사된다. 이미 결과가 정해진 듯한 흐름. 이웃들의 합류도 대규모 전투를 위한 머릿수 채우기에 가까운 인상을 주며, '아마 이랬을 거니까!' 식의 나이브한 내러티브는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 설득은 없고, 예정된 동기부여가 반복될 뿐이다. 특히 전투 전 장엄하게 외치는 월레스의 연설 장면은, 그 장면에서 얻었어야 할 '진지함'보다 (부산스러운 편집으로 인해) 과잉의 느낌만을 얻는다. 잠적한 채 귀족들을 암살하고 다니는 월레스의 전설이 퍼져나가는 장면들 또한 꽤나 구식이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그 감상주의는 뻔하고 대책없다. 이미 서사 전체가 스스로 '뽕에 취해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너무 노골적인 예수 모티프와 순교자 이미지에 매달린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는 때깔 좋은 프로파간다 고문 포르노에 가깝고, '감동'이라는 감정을 미리 소비한 나머지 그 장면이 도달하는 감정적 도착지는 오히려 비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군중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값비싼 포장지를 둘러친 '값싼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겉은 장중하지만 속은 단순하며, 진지해 보이지만 실상은 감상적이고, 거대해 보이지만 정작 감정의 세공은 허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