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세상을 철저히 살 수 있었다. 내 온 몸으로 익힌 세상의 감각은 나를 살아내게 해 주었다.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꼿꼿이 살아내야만 나의 유산을 잃지 않을 것만 같았다. 허나 삶의 목적을 잃으니, 지금 나는 정말로 장님이 되고 말았구나.
<여인의 향기>는 아마도 시선의 영화다. 우리는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소년의 시선에서 이 괴팍하고 특이한 노인을 목격하게 된다. 찰리와 관객은 동시에, 관조할 뿐이었던 프랭크라는 인물에 대해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핵심은 나이 든 맹인 중령 프랭크이지만, 이 영화는 그를 쳐다보는 객체인 찰리의 서사를 제법 튼튼하게 붙여놓는다. 찰리는 단지 관찰자일 뿐 아니라 성장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기에.
또 <여인의 향기>는 세월의 영화다. 말하자면 프랭크는 세월을 먹고사는 인물이고, 찰리는 세월에 덮여가는 인물이다. 프랭크는 과거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여행을 떠니며, 찰리는 그 프랭크와 동행하며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워나간다.
뻔한 주제에,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도 참신하지 못하다. 결말도 (지극히 할리우드스러울 것이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좋은 뜻에선 정공법적인 감동을, 나쁜 뜻에선 케케묵은 고루한 방식의 답을 제공한다. 허나 위대한 배우 한 명이 영화 전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그 영화 전체에 대한 인상도 달라질 수 있겠다 느낀 첫 번째 작품이 될 것 같다. 알 파치노의 위대한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 명연이다.
누군가 나에게 영화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대가 어느 시대냐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할리우드의 '뉴 아메리칸 시네마'라 불리던 그 시점을 꼽을 것이다. 허나 그보다 약 20년쯤 지난, 할리우드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의 시대를 나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시기 특유의 노랗고 따뜻한 색감, 그리고 20년 전과의 분위기와는 어쩌면 정반대인 낙천적 세계. 이 시기의 영화들은 무언가 근본적인 낙관주의가 있다. 비극으로 귀결되는 영화들에도, 선배들의 작품들과 같이 지하까지 추락하는 절망의 감정을 담지는 않는다. 이 시기가 혹자는 그들이 자본적으로 성장해 배에 기름이 찬 시기라며 악평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또 지금과는 다른) 이 시기만의 순수한 낙천성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