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히어로 영화에서 ‘약함’의 마지노선은 오리지널 수트를 입은 스파이더맨이었을 것이다.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살상에 특화된 무기를 지닌 것도 아니며, 신체적으로도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은 늘 위기를 극복했고, 짜릿한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그는 누구나 일정할 수 있는 ‘히어로’였다.
하지만 본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도무지 ‘히어로’라고 부르기 어려운 이들이다. 믿음직스럽지 못하며, 단합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작품 내에서 어떤 눈에 띄는 성취를 이뤄냈다고 보기 어렵다. 추하게 엘리베이터로 다 같이 도망치는 장면은, 마블 세계관에서 처음 보는 종류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각자 불우한 과거를 지니고 있고, 그 트라우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본작은 말하자면 ‘하자투성이 루저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무능한 인물들의 조합은 마블 세계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순간들과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는 옐레나에게 “내 눈에는 너의 실수가 보이지 않아. 그래서 서로가 필요한 거야”라고 위로하는 알렉세이의 말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오리지널 어벤져스 멤버들에겐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대사였을 것이다.
시민을 구조하는 장면 또한 인상 깊다. 단 한 명의 시민을 구하기 위해 무려 다섯 명의 ‘히어로’가 달려와 힘을 합치는 모습은, 지금껏 마블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광경이다. 헐크나 토르가 있었다면 혼자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존재들이 아니기에 반드시 ‘합쳐야 한다’. 그들의 협력은 무능함의 결과이자 동시에 공동체적인 당위의 결과다. 이는 오히려 이제서야 ‘시민 곁의 히어로’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새롭고도 진정성 있는 성취다.
액션 장면에서도 본작만의 매력이 있다. 예를 들어, 서부극이나 <매드 맥스>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자동차 추격전 장면은 굉장히 인상 깊다. ‘초능력’이 없다시피 한 이 작품에서 그런 ‘땅에 붙은’, ‘히어로답지 않은’ 액션이 오히려 이질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물론 마블 영화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빌런의 아쉬움’은 본작 역시 피해 가지 못했다. 빌런이 단일한 악인이 아니라 ‘인격 중 하나’로 그려지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마저 고작 ‘밥의 꿈속’이라는 설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위협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본작이 차후 마블 페이즈의 중요한 위치를 점할 ‘뉴 어벤져스’급 작품이라면, 이러한 구성은 확실히 아쉽다. 결국 <썬더볼츠>는 <어벤져스> 1편의 열화판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만큼의 서사적 부담을 감수하고서도 ‘센드리’라는 인물을 캐릭터라이징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그가 이후 세계관에서 어떻게 활용될지는 미지수지만, 이 영화는 센드리를 위한 첫 단추이자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