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천사들Angels of the Universe

2000 ·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슨 · 덴마크, 독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버림받은 천사들 포스터
100분 · 드라마 · 출연 잉그바르 시귀르드손, Baltasar Kormákur, Björn Jörundur Friðbjörnsson, Hilmir Snær Guðnason · 음악 Hilmar Örn Hilmarsson · 촬영 Harald Gunnar Paalg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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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의식을 잠식한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는 묘하게 사람을 집어삼킨다. 한반도 중 남한과 비슷한 면적에 서울 도봉구 인구 수준인 약 40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드문 인구보다도 더 뚜렷하게 다가오는 건 공간의 밀도다. SF 작품의 로케이션으로 자주 쓰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나는 이 나라를 시규어 로스, 유로 2016의 축구, 그리고 감독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슨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접했다. 그리고 그의 영화 <버림받은 천사들>을 보고 나서야 이 나라가 단지 ‘특이한 나라’가 아니라, 어떤 불가항력적인 정서를 품은 압도적인 공간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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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천사들>은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어떤 공기에 잠기는 경험에 가깝다. 그 공기란 곧 아이슬란드라는 공간이 내뿜는 감정이다. 극도로 낮은 인구 밀도, 변화무쌍한 자연, 짧은 낮과 긴 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항우울제 소비율. 이 모든 것들이 한 개인의 정신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침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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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기이한 행동들은 단순한 실연 때문이 아니다. 의사인 닥터 브린욜프의 말처럼, 그의 행동은 이 땅에 존재하게 됨으로써 드러난 어떤 내면의 분열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그를 병원에 가둬두지만, 병원의 인물들은 대부분 선하고 평온해 보인다. 오히려 폴이 정상처럼 보이는 지점. 하지만 누구든 ‘트리거’를 만나면,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드러난다. 병원 안과 밖의 경계는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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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유일한 친구 론발도는 의사이며, 사회적 성공을 이룬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폴보다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죽음은 폴이 자살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높은 지위조차 이 땅의 중력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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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주하는 세상은 무정하고 차갑다. 밥을 먹다 불량배에게 돈을 빼앗기고,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도 돌아오는 건 진심 없는 호응과 신청곡 요청뿐이다.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고, 그는 육신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결국 죽음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유에 닿는다. 그제야 그의 영혼은 아이슬란드의 공기 속에서 가볍게 떠오른다. 연출은 그 심리를 더욱 강조한다. 잦은 디졸브는 등장인물들을 유령처럼, 혹은 필멸의 존재처럼 흐리게 만든다. 배경과 인간은 분리되지 않고, 그 속에서 부유하며 지워진다. 시각적 기법 자체가 인간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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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이코드라마를 꽤 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는 유독 힘겹게 다가왔다. 이유는 명확하다. 단지 주인공의 비극 때문만은 아니다. 애매한 CG, 불안정한 카메라, 감정의 설명이 철저히 생략된 스토리텔링. 그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건 배우 잉바르 에거트 지거드슨의 경이로운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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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문득 <택시 드라이버>가 떠올랐다. 길이 너무 많은 도시 뉴욕에서 길을 잃은 트래비스 비클. 그리고 길 자체가 없는 나라에서 방황하는 폴. 둘 다 영화 데이트에 실패하고,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분노를 표출한다. 다만 트래비스가 총을 든 뒤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반면, 폴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침묵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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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버림받은 천사들>은 묻는다. 인간의 정신은 어디까지 자기 것으로 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정신을 잠식하는 공간의 힘은 얼마나 거셀 수 있는가?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사람
이 감독을 더 보고 싶어1편›
프리드릭 토르 프리드릭슨
소재
아이슬란드가 배경인 영화4편›
정신병원이 배경인 영화가 궁금해12편›
광기를 다룬 영화가 궁금해22편›
우울을 다룬 영화가 궁금해28편›
정신질환을 다룬 영화가 궁금해34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46편›
소설·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254편›
리뷰
리뷰에서 함께 이야기한 영화1편›
음악·촬영
음악 · Hilmar Örn Hilmarsson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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