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이다. 110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사실상 초반 20분 간을 그들을 위한 '세팅'을 하는 장면에 할애한다. 마치 이제부터 자신들이 풀어낼 이야기들을 가벼운 태도로 다루지 않겠다 선언하는 듯하다. 또한 교회의 이들이 무엇을 위해 그곳을 준비하는지, 그 공간의 주인공들은 무엇을 위해 모인 것인지, 영화는 설명치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을 몰입시키고 견인시킬 수 있다는 듯,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할 뿐이다. 각본 자체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건의 피해자가 시간과 소통을 통해 치유받는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창작물에서 사용했다.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안전한 소재이며 '착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매스>는 어려운 길을 간다. 가해자의 입장을 들여다보고 가해자를 치유하는, 아마도 창작물에서 금기와도 같았을 것을 향해 이 영화는 천천히 전진한다.
그들 간의 대화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갈등의 지점들도 이 영화는 피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가족들 역시 자식에 대해 '몰랐던 것들'이 있었을 테지만 이를 믿을 리 없는 피해자의 가족들. 자식의 '증세'를 과연 그들은 언제부터 알았을 지에 대한 관점의 차이. 그들이 화자가 되는 순간, 청자가 되는 순간의 시간적 분배도 균형적이며 이로 인해 영화가 '치우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훌륭한 각본과 연기라는 요소에 더해 영화의 연출도 훌륭한 수준이다. 마치 이 영화는 <케빈에 대하여>의 에너지를 가지고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이성을 머금은 채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균형감을 보여주는 영화 같다. 공간을 한정한다면 완벽한 편집과 배우들의 명연이 뒤따라와야 했을 터, 이 영화는 훌륭하다.
네 주인공의 감정적 골이 가장 깊어지는 순간 인터미션처럼 붉은 리본이 등장하고, 화면비는 시네마스코프에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말하자면 이 시점부터는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들이다. 스코프가 그렇다. 그 곳의 더 많은 것을 보는 것이고, 더 많은 것을 담는 것이다. 이때까지 관조하던 카메라가 이 시점부턴 하나의 인격을 부여받는 것처럼 보인다. 인격으로서의 카메라는 보다 궁극적이고도 근본적인 진심에 대해 다가간다. 가해자의 가족들도 유족일 수 있으며, 자신의 자식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자신의 자식을 온 맘 다해 베푼 사랑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