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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버리고 떠난 영화감독 구스타프는 재회한 딸에게 영화 출연을 제안한다. 하지만 노라는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단칼에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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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 한다. 가장 창의적인 것은 가장 예술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센티멘탈 밸류>는 한 집안의 역사를 모두 담고 있는 저택에서 홀로 살고 있던 주인공 자매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오래 전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불편한 재회를 하며, 끊을 수 없는 물리적 거리로 이미 끊어진 지 오래인 심리적 거리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아버지 보르그는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며 큰딸 노라는 연극계의 스타 배우다. 부녀가 모두 예술계에 종사한다는 것은 혈연이라는 둘의 공통점만큼이나 강력한 연관관계가 된다.
연극에 대한 둘의 태도는 정반대다. 그렇지만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유는 어쩐지 두 인물이 유사한 측면이 있다. 보르그는 감독이다. 영화라는 매체에서 감독은 권력자다. 어쩌면 자신의 입맛대로 현실을 변형하고 조작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위치에 있다.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찍으면서도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을 남길 수도 있는 것이 '감독'이다. 그렇지만 연극이라는 매체는 감독의 권력이 사라지다시피 한 매체다. 일단 막이 오르면 연극은 온전히 배우의 무대이며,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퍼포먼스가 생겼다 하여 도중 무대를 끊고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연극이다. 자신이 무쓸모해지는 예술이 연극이기에 보르그는 연극을 싫어했던 것은 아닐까.
반면 노라는 연극에 있어 정반대의 태도를 취한다. 노라는 배우다. 배우에게 있어 연극은 최적의 환경일 것이다. 외부의 방해가 최소화된 채, 자신의 기술과 캐릭터를 해석하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장. 그리고 그 무대는 노라라는 인물의 특성에도 최적의 장소였을 수 있겠다. 아픈 과거로 인해 노라는 스스로를 응시하는 것을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도 못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마저 어린아이처럼 서툰 인물이다. 그렇기에 (직전까지 극도의 긴장을 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 타인(배역)이 되어야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르그의 신작에 캐스팅된 레이첼의 행적엔 흥미로운 지점이 포착된다.
본작의 시점 가장 주가가 높은 배우처럼 보이는 레이첼은 그 스타성 뿐 아니라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다. 스타이기 전에 분명한 배우인 그녀는 자신의 경험과 여러 정보들을 동원해 자신의 배역을 파악하려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도 도무치 해석할 수 없는 캐릭터의 지점을 레이첼은 발견하게 된다. 그 배역의 모티프가 된 듯한 보르그의 어머니 카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는 학술 역사학자인 아그네스의 노력이 있지만, 그러한 기록으로도 짚이지 않는 지점이 창작/예술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아마 피로 연결된, 혹은 (똑같이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의미심장하게도 비슷한 행적이 있었던) 또다른 당사자인 노라만이 알 수 있는 것일 테다. 혈연만으론 불가능하고, 예술가적 기질만으로도 불가능하지만, 그 모두를 함께 가지고 있는 노라라면. 그것은 노라에게 최적의 역할이다. 그리고 노라에게 있어서도, 자신을 맡기 위해선 자신을 응시해야만 한다. 자신이 잘하는 '배역이 되기'의 기술을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노라는 (계속해서 도망치면서도) 그 저택에 당도해야 하는 것이다. 기록되지 않고 무의식에 상처로 남아온 것들을 살아낸 것은 인간 뿐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도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라에게 집은 자신의 역사를 응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술가는 개인적 고난을 예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함으로서 극복해 가는가. 흥미로운 것은 본작의 예술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예술가'라는 그들의 직업이 마치 귀속지위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남들과 달라." 라는 선민의식이 아니라 "나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라는. 자신의 기질에 대한 탄식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고고한 예술가가 '해 주는' 것이 아닌, 그것'밖에'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어쩌면 소박하고 진실한 예술가의 이야기.
<센티멘탈 밸류>는 우아함의 극한을 보여주는 영화다. 시간을 넘나드는 플래시백의 연출은 과거를 현재 시점과 이격되지 않고 덩굴처럼 섞여 마치 하나의 흐름처럼 읽히게 한다. 장면 자체만으로도 'EPIC'한 순간들을 선사한다. 레이첼과 보르그가 연보라빛 해변에서 시간을 보낼 때 그야말로 심장이 뻥 뚫리는 벅찬 순간이었고, 그저 보르그의 회고전으로 삽입된 '영화 속 영화'의 장면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서사적인 장면이다. 그 자체만으로 보르그의 명성을 짐작케 하는.
섬세한 감독 덕에 본작의 모든 배우들은 훌륭한 연기를 보인다. 크게 중요한 인물도 아니고 연기력을 보여 줄 여지도 적은 배역이지만 엘 패닝은 그 존재만으로 그 배역에 합당한 인물이었다. 레나태 라인스베와 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 모두 훌륭했다. 특히나 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의 연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예술가의 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예술가적인 언니를 서포트하는 학술 역사학자. 그 중에서도 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정말로 위대한 배우다. 대사로 채 표현할 수 없는, 한 순간에 기쁨과 슬픔과 불안함과 겸연쩍음 등 여러 개의 감정이 공존하는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그 외에 많지 않을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