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는데 거리에 온갖 좀비들이 득실댄다. 그러나 묘하게 그들의 이미지에 '살육'의 기운보단 아기자기 귀여운 인상이 풍긴다. 할머니 좀비가 물었는데 틀니가 빠진다거나, 딸이 좀비 행세를 하며 위기를 넘기려는 모습들에선 이 영화가 어떤 정서를 우선하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조정석의 선한 광기 캐릭터는 이제 마동석 급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듯하다. 이런 배우의 존재 덕분에 영화가 최소한의 흥미를 이어간다. 한국엔 위대한 배우들이 많다. 동시에 위대하다고까진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으나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들이 한국엔 너무나 많다. 이토록 훌륭한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지금 정도의 평가마저 택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면들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지점들이 많다. 수아의 환상을 보는 시작과 끝의 편집은 심히 당황스럽다. 정환의 내면을 비추는 순간은 한 번쯤 필요했으나, 갑작스러운 등장이 불편하고 그 맺음 또한 너무 급하다. ‘내가 제일 잘 나가’ 씬은 과하다 못해 대충 만든 듯한 태만한 각본을 드러낸다.
후반부에선 난데없이 친부가 등장한다. 그나마 있던 개성마저 희미해지고, 실없는 코미디를 지향하던 영화가 돌연 욕지거리를 뱉는 K-범죄 영화의 악습을 답습하며 분위기를 180도 튼다. 여기에 최후반부는 군의 동원으로 축축한 감정적 순간들이 덧붙여진다. 어울리지 않는 톤과 요소들이 난잡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공식적으론)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이 무능하고 매정한 정부다. 본작 역시 그 모티프를 차용하지만, 진부하기 그지없는 방식이다. 뉴스에서 ‘감염자 은닉 시 범죄로 간주’라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걸 보고 긴장하는 등장인물, 감염자의 어머니가 보는 와중에 군이 투입돼 감염자를 사살하는 장면, 절대적 다수가 되어 소수를 몰아넣는 악 vs 선의 구도. ‘정부’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심한 기시감으로 엉겨붙어 있다.
결국 나쁘지 않은 씬 몇 개에, 나쁜 씬 십 수개의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