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哭聲)The Wailing

2016 · 나홍진 · 한국, 미국
곡성(哭聲) 포스터
156분 · 공포 · 미스터리 · 15세 이상 · 출연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쿠니무라 준 · 음악 달파란 · 촬영 홍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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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외지인이 나타난 후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사건들로 마을이 발칵 뒤집힌다. 경찰은 집단 야생 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모든 사건의 원인이 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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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다운 판단들로 인해 파멸하는 이 부조리한 뻘밭

다수가 동의할 결론부터 말하고 싶다. 일광은 악인이고, 일광과 외지인은 한 패이며, 둘 다 악이다. 무명은 선한 존재, 마을을 지키는 신령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신령의 말을 끝내 듣지 않은 종구의 선택이 파국을 막지 못했다. 영화를 두어 번 곱씹으면 대체로 이와 비슷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나 이 결론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여 곡성의 전부를 깨달은 것이냐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다. 곡성은 추리 영화가 아니다. 저 혼돈 속에서 선과 악을 가려내는 과정을 밟을 수는 있으나, 그 숨바꼭질이 작품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곡성은 비밀과 결과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태도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정확히 잘못된 태도의 화신이다. 종구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끝까지 '이유'를 찾는다. 부부가 죽어 나간 사건 앞에서 왜 그랬을까를 묻고, 일련의 사건이 두드러기와 관련이 있을까 싶어 동료 성복을 피부과로 보낸다. 외지인의 집에 들이닥쳐 범행 현장을 낱낱이 찍어 둔 사진 한 뭉치를 손에 넣고는 드디어 이유를 찾았다고 믿는다. 딸 효진의 상처가 앞서 죽어 간 피해자들의 증상과 닮은 것을 보고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며 기어이 인과를 세우려 든다. 곁의 성복 또한 내내 까닭을 캐는 자다. 경찰이라는 직업의 관성 때문인지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영화의 모든 환경이 종구를 '이유를 찾는 존재'로 몰아간다. 그래서 종구는 이유를 찾았는가. 설령 이유에 당도했다 한들, 그는 이 사태를 막거나 풀었는가. 아니다. 종구는 무력한 자다. 끝까지 무능한 자이며, 그의 의심은 아무것도 낳지 못한 채 오직 끝없는 의심으로만 남아 결국 화를 부른다.

<곡성>이 무서운 것은 그 잘못된 태도를 종구에게만 지우지 않고 관객에게까지 고스란히 옮겨 붙이기 때문이다. 외지인은 극의 초반부터 대놓고 의심스러운 존재로 등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종구에게 집과 개를 파괴당하고 그 일행에게 쫓기며 부상에 신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저 자가 정말 죄 없는 존재라면 어쩌나 하는 의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반대로 일광에게는 의심조차 품게 되지 않는다. 훈도시 차림 같은 복선이 뻔히 깔려 있지만 그것은 잠시 접어 두자. 그는 종구와 이 세계를 구해 줄 조력자처럼 그려진다. 급기야 심각한 정신착란을 부른다는 야생 버섯 뉴스가 흘러나오면, 우리는 혹 이 모든 일이 버섯 탓은 아닐까 매달린다. 종구가 그러하듯 관객 또한 기계적으로 인과를 찾는다. 미끼를 물고 그것에 휘둘리는 존재는 종구만이 아니다.

문제는 그 추적이 결코 선명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못하도록 영화가 처음부터 판을 짜 두었다는 데 있다. 일광이 살을 날리는 장면을 보라. 그가 굿을 벌이는 동안 외지인은 제 집에서 춘배의 사진을 걸어 두고 또 다른 의식을 치른다. 일광의 의식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고통에 몸부림치는 효진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외지인의 얼굴이 교차한다. 일광을 믿는 눈으로 보면 그는 외지인을 향해 살을 날리는 중이다. 그러나 그가 겨눈 대상이 외지인이 아니라 효진이었다면, 같은 씬의 맥락은 정반대로 뒤집힌다. 딸이 아파하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하고 종구가 굿판을 엎어 버리는 순간마저, 우리는 그 난입이 딸을 구한 것인지 망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효진은 진짜로 씌었다. 발진과 폭력성과 욕설, 사람이 통째로 뒤바뀌는 그 증상은 앞서 죽어 간 마을 사람들의 것과 정확히 같다. 위협은 실재했다. 그러니 종구 앞에 놓인 물음은 '움직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였다. 무명은 집에 가지 말고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리라 붙잡고, 같은 시각 일광은 전화로 당장 집에 가라며 종구를 재촉한다. 두 초자연적 존재의 권위가 정반대를 명령하는데, 종구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신호는 모조리 일광 쪽을 가리킨다. 일광은 돈을 주고 부른 무당이고 말이 통하며 대놓고 종구의 편처럼 군다. 반면 무명은 돌을 던지는 정체불명의 미친 여자처럼 보였고, 아무 이유도 대지 않은 채 무작정 믿으라고만 한다. 죽어 가는 딸을 둔 아버지에게 증거도 없이 낯선 여자를 믿고 기다리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종구가 일광을 믿고 집으로 내달린 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제정신인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함정은 바로 거기에 있다. 가장 사람다운 판단이 가장 치명적인 판단이 되도록 세계가 짜여 있다는 것.

이 모든 설계 위에 신학의 골조가 얹힌다. <곡성>의 시작은 신약 누가복음의 한 구절로 시작한다. 부활한 예수를 유령인 줄 알고 겁먹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의심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만져 보라 이르는 장면의 구절이다. 종구는 부활한 예수 앞에서 의심했던 도마와 같다. 집에 가지 말라는 무명에게 그는 당신이 사람인지 귀신인지부터 알아야 믿겠다며 제 상식으로 납득할 증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증거를 향한 그 충동이야말로 미끼다. 영화의 끝, 동굴에서 부제 양이삼이 정체를 캐묻자 외지인은 눈이 벌겋게 물들고 뿔이 돋은 형상으로 변하며 제 손과 발의 못자국을 들이민다. 그가 읊는 것이 하필 서두의 그 누가복음이다. 악마가 사제에게 그의 경전을, 그것도 부활한 그리스도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서두에서 그리스도가 하던 몸짓, 상처를 내보이며 나를 만져 보라 하던 그 몸짓을 결말에서는 악마가 똑같이 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내 둘 중 누가 진짜인지 알려 주지 않는다. '손과 발을 보라'는 성경에서 믿음의 근거였으나, <곡성>에서는 그 근거가 악마의 낚싯바늘로 뒤집힌다. 도마가 되어 증거를 요구한 자에게 이 영화가 내미는 답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도마는 종구만이 아니다. 부제 양이삼 역시 도마이되, 종구와는 정반대 편의 도마다. 종구가 끝내 증거를 얻지 못한 도마라면, 양이삼은 증거를 얻은 도마다. 도마가 그토록 원하던 바로 그것, 손과 발의 상처를 코앞에서 목격하기까지 한다. 다만 그 못자국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악마의 것이었을 뿐이다. 본래 성경 속 도마는 의심이 보상받는 이야기였지만, <곡성>은 더욱 잔인하게도 그 보상을 통째로 걷어낸다. 한 도마에게는 볼 기회를 영영 주지 않고, 다른 도마에게는 보여주되 그 본 것이 그를 무너뜨린다.

효진이 아버지를 향해 '뭣이 중헌디' 하고 악을 쓸 때 그 말이 그토록 잔인한 것은 답이 이미 눈앞에 있어서다. 중한 것은 딸이었고, 그저 딸의 곁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곁을 지키는 그 단순한 일조차 이 세계에서는 낯선 여자를 증거 없이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 답은 뻔히 보이는데 그 답에 이르는 길이 인간에게 막혀 있는 것이다. 딸을 지키려는 마음과 알 수 없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일을 양립할 수 없도록 갈라놓은 세계, 그 사이에서 끝내 사랑을 택한 "선한" 인간이 파멸하는 구조. 이것은 선악을 가리는 도덕 우화가 아니라, 정답을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아둔 코즈믹 호러다. 그러니 범인을 색출하겠다며 이 영화를 열 번 스무 번 되돌려 보는 일은, 종구가 그러했듯 끝내 쥘 수 없는 확실성을 요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영화의 공포는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니라, 알 수 없음 그 자체를 견디게 만드는 데 있다.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지도
「눈먼 자들의 질주」 지도›「영화가 영화에 답하다」 지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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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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