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관련 일을 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어느 노년 여성의 인터뷰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곧이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 시절의 그녀 시점으로 시간이 전환된다. 그녀는 히틀러의 비서직에 지원했던 여성으로,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했던 노년 여성이다. 말하자면 '오프 더 레코드'의 상태인 히틀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거의 유일한 민간인이자, 이 영화의 주요한 화자다.
그녀는 단번에 비서직에 합격했다. 그녀를 맞이한 히틀러의 첫 인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외적인 이미지와 달리 차분하고 다정해 보였다. <다운폴>은 그렇게 '그녀의 시선'을 통해 히틀러와 그의 몰락을 따라간다.
하지만 2년이 흐른 뒤, 그의 분위기는 프롤로그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대중 앞에 설 때가 아닌, '오프 더 레코드' 상태에서 드러나는 히틀러의 모습은 점점 초조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왼손의 떨림은 이제 멈출 줄을 모른다. 전황이 점점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여전히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라는 '제3세계' 계획에 대한 망상을 놓지 않는다. 아직도 그는 전세 역전을 꿈꾼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운폴(Downfall)'이라는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몰락'에 관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것은 본작의 몰락이 '정상적인 수준이었다가 망해가는' 이야기가 아닌, '망한 상태에서 더 처참히 망해가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마치 주식 투자에서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고 말하듯,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끝이 어딘지 모를 나락을 향해 점점 더 추락해간다.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전투 장면조차도 '교전'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인 폭격 장면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시작 약 20분 이후부터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를 모두 알고 보게 되는 영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뻔하다'고 치부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 <다운폴>의 진짜 가치는 이처럼 예정된 몰락의 과정 속에서, 그 몰락을 앞두고 인간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부서지고, 분열하고, 발버둥치는지를 냉정하게 포착한 데 있다.
이러한 시선 덕분에, <다운폴>은 명확히 히틀러가 중심인물로 등장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그'가 아니라 '그들'이다. 영화는 후반부에서 이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많은 관객들이 '마지막' 장면일 것이라 기대했을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자살 장면은 실제로는 영화의 중후반부 '도중'에 등장하며, 그들의 죽음 자체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으며, 유혈이 낭자했을 시신 또한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담요에 둘둘 말린 채 들려 나오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만 처리된다. 이는 히틀러조차 '그들 중 하나'였음을 상징한다.
더 나아가 영화는 히틀러의 죽음 이후에도 30분 가량을 더 할애해, 남은 인물들이 하나씩 스러져가는 모습을 충실히 담아낸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은 히틀러의 자살이 아니라, 자녀들을 독살하고 함께 죽음을 택하는 괴벨스 부부의 장면일지도 모른다. <다운폴>은 몰락의 클라이맥스를 히틀러가 아니라, '그들'의 최후에 둔다.
한편, 이 영화는 히틀러의 상냥한 면모를 일부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면죄부로 작용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장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를 '수많은 국민을 이끄는 리더'로 보게 하기보다는, 한낱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어떤 인물의 행동의 방향이 아무리 악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때때로 그 강력한 에너지에 무의식적으로 매혹될 수 있다. <다운폴>은 바로 그 '악의 카리스마'를 걷어낸 드문 사례다. 악은 종종 무능하고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것을 정확히 포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