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르코프스키가 전쟁영화를 만들면 어떤 완성품이 나올지 항상 궁금했었다. 라리사 셰피트코의 <고양>은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고양>은 감히 CG로 표현해낼 수 없는 리얼하고도 무지막지한 화면의 심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러시아의 영화 하면 항상 생각나는 것은 드넓은 대지다.
라리사 셰피트코의 남편은 그 유명한 <컴 앤 씨>의 감독 엘렘 클리모프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컴 앤 씨>가 보여준 것처럼 극단적이고 인공적인 대칭적 클로즈업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와 엘렘 클리모프의 영화를 섞은 듯 보이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수다스러운 베테랑 콜리야, 후반부가 되어서야 본명이 공개되는 명사수 보리스. 보리스는 여정의 시작부터 기침에 시달리고 골골거린다. 반면 일행의 리더처럼 느껴지는 콜리야는 항상 선두에서 걸으며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보리스가 다리에 총상을 입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자 그를 이끌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위기에 맞설 때가 아닌, 이미 위기 그 안에 들어가 있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의 진짜 모습은 드러나게 된다. 포르트노프 수사관의 고된 심문을 만나면서도, 이미 죽음의 문턱에서 신음하고 있던 보리스는 놀랍게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침묵과 절개를 지킨다. 고문을 받는 중에도 그 분명한 눈빛은 되려 수사관을 질리기 만들었다. 허나 이제까지 항상 전방에서 자신만만해 하던 콜리야는 정반대로 완전히 겁에 질린 채 살아남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감옥 안에서 보리스는 콜리야에게 말한다. 군인임을 기억하고, 똥물에 구르지 말라고. 그런 보리스에게 콜리야는 말한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양심을 팔고 살아남으라 조롱하는 보리스에게 콜리야는 분노한다. 행동하지 않았던 네가 나에게 양심을 운운할 수 있냐고. 그들의 갈등을 지켜보는 우리 역시 고민하게 된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보다 정확하게, 과연 나라면 보리스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타르코프스키의 페르소나라고 확신하며 소개할 수 있는 배우 아나토리 소로니친은 그 등장부터 무시무시하다. 포르트노프 수사관을 맡은 그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또 다른 주연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독하기 그지없는 나치의 일원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전쟁 전은 농장 출신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였고, 성가대의 지휘자였으며, 동호회의 관리자였다. 보리스와 같은 대학을 나온 인물이었고, 감옥에 갇힌 그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주민이었다. 그랬던 자신은 나치의 광풍에 살아남기 위해 아마도 변절했을 것이고, 콜리야의 변절에 누구보다 기뻐했던 까닭은 자신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이유이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렇다면 공고한 보리스의 태도에 겁먹은 까닭 역시 이해가 될 것이다.
50년이 다 되어 가는 영화임에도 화면의 심도를 자랑하는 기교가 눈에 띄며 '콜리야의 상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때의 감탄도 있다. 무엇보다, 살고자 하여 기어이 살아남은 콜리야가, 죽으려 하지만 죽을 수도 없는 처지로 남아 울부짖는 엔딩의 감명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