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고 세심한 촬영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본작의 감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녀가 촬영감독 출신이었으며, 본작이 연출 데뷔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맨땅에 헤딩한 결과물이 아닌 덕인지, 본작에는 몇 편의 장편을 이미 연출한 감독의 작품인 듯한 기품이 담겨 있었다. 주연을 분한 케이트 윈슬렛의 내레이션은 서사적이며, 영화의 리듬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
"여자는 왜 최전방에 가면 안돼?"라는 외침에 그치지 않고 리는 실제로 최전방으로 향한다. 페미니즘적 논의를 차치하고서도, 금기를 깨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카메라의 셔터 소리는 종종 총의 방아쇠 소리에 비견되곤 한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그러나 직접적인 관여자가 아닌 ‘종군 기자’로서의 리, 게다가 ‘여성’이라는 점은 그 자체로 강렬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머리를 삭발당하는 “더러운 부역자 창녀들”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이나, 히틀러의 화장실 욕조에 들어가 샤워하는 사진의 오브제가 되는 장면은 그 긴장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본작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영화 속 시선이 종종 백인 남성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기울어 있다는 점이다. 그녀가 있었던 현장의 군인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 군인들에게 존중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군인’을 곧 ‘남성’의 동의어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영화가 성별의 대결 구도로 흘러간다면, 여성은 고통받으며 살았지만 남성은 고통받으며 죽었다. 겁쟁이 롤런드, 우유부단한 데이비드, 보그 사의 기자, 노르망디의 대령까지. 리 밀러의 주변을 감싸는 남성들이 전부 백인이며, 유일하게 온전한 인간으로 그려지는 인물이 전투 도중 마주친 ‘흑인’ 군인 한 명뿐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소 기능적이고 평평하게 느껴졌던 외화(外話)에도 감독은 하나의 변수를 더한다. 인터뷰어가 다름 아닌 리의 아들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인터뷰가 실제로는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만들어낸 ‘가상 인터뷰’였다는 사실이다. 전장을 뒹굴며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에게조차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리. 누구에게도 자신의 한을 넋두리하지 않았던 그녀의 침묵이 마지막에 가서야 울림을 갖는다.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분노하던 토니가, 끝내 어머니의 인생을 이해하게 되듯, 관객 역시 엔딩에 이르러 리 밀러라는 인물에게 깊은 존경심을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