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 · 리처드 링클레이터 · 미국
비포 선셋 포스터
80분 · 드라마 · 로맨스 · 15세 이상 ·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Vernon Dobtcheff, Louise Lemoine Torrès · 촬영 Lee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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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서의 꿈 같은 하루 이후 9년이 지나, 파리에서 다시 마주한 제시와 셀린느. 비엔나의 특별한 추억을 소재로 쓴 베스트셀러의 유럽 홍보 투어 중인 작가 제시는 파리의 서점 구석에 서 있는 셀린느를 발견한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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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닿지 못한 강은 마르고, 바다에 도착한 강은 제 이름을 잃는다.

<비포 선셋>이 <비포 선라이즈>와 가장 크게 갈라지는 지점은 이야기의 시작점이 0이 아니라는 데 있다. <비포 선라이즈>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이야기라면, <비포 선셋>에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있다. 9년 전 빈에서의 하루, 그리고 다시 만나기로 해놓고 끝내 만나지 못한 시간이 <비포 선셋>의 밑바닥에는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포 선셋>은 낭만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비효율의 잔해를 치우는 일에서 출발한다. <비포 선라이즈>는 낭만이었고, 비효율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 전화번호조차 교환하지 않았고, 그 낭만적인 비효율 때문에 9년을 어긋난 채 흘려보냈다. 과거에 대한 가정과 후회는 그런 두 사람을 밀고 가는 동력이다. 그때 우리가 다시 만났다면? 셀린의 할머니가 하필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도 없는 공연한 가정이지만,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상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제시가 그 9년 전 하루를 한 권의 책으로 써서 출판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에게 그날은 분명한 현실이었지만, 책 한 권에 봉인되는 순간 그것은 판타지와 같은 형식, 판타지와 같은 지위로 옮겨간 듯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셀린은 자신의 캐릭터가 조금 왜곡된 것 같다고 말하다 멈추고, '나'가 아니라 '그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인지 잠시 헷갈려 한다. 현실을 살았던 사람이 그 현실이 한 권의 소설로 봉인되자, 정작 자신이 그 이야기 속 인물인지 아닌지가 아득해지는 것이다.

셀린이 느끼는 이 아득함은 영화의 형식과도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포 선셋>은 대부분 롱테이크로 찍혔고 컷이 적다. 그래서 대화 사이사이 '마'가 뜨는 시간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 비효율적이고 죽어 있는 시간이 쌓이면서, 도리어 이 영화만의 신뢰성이 세워진다. 편집으로 잘라냈을 법한 침묵과 머뭇거림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우리는 이 대화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게 된다.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은 비효율이 두 사람을 어긋나게 했다면, 대화에 남은 비효율은 두 사람을 진짜로 만든다.

트릴로지의 한가운데 놓인 작품답게, <비포 선셋>은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미드나잇> 양쪽의 특징을 모두 품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뒤 두 작품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개성을 지닌다. 첫 재회 장면이 그렇다. 반갑지만, 9년 전만큼 무대포는 아니다. 두 사람은 낭만적인 20대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어색한 30대로 다시 만난다. 이상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형성되어 가는 '관계의 구조'와 자신 사이의 괴리를 체감하는 나이다.

제시는 이상을 꿈꾸는 몽상가이면서도 결혼과 자식, 섹스리스, 정장으로 대표되는 평범하고 정해진 삶을 어쩌다 살고 있다. 셀린은 사회의 병폐를 끊임없이 응시하는 현실적인 사람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아직 자유로운 관계에 놓여 있다. 프로필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본성과 '다른' 삶을 역설적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완벽히 이쪽도 아니고 완벽히 저쪽도 아닌 중간계에 놓인 존재들이다.

그 어긋남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슬픔을 안고 있다. 셀린은 자신과 끝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훗날 결혼했다고, 자신은 사랑에 성공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속으로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그 말을 들은 제시는, 자신은 1년 365일 매일같이 불행하고 언제든 이혼하고 싶지만 자식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는 존재라고 화답한다. 사랑에 실패한 이가 슬피 우는데, 사랑에 성공한 이 역시 슬피 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대화가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 허세가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열정적이고 비판적인 셀린, 그것을 잘 받아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풀어 주는 제시. 두 사람은 서로의 말에 반박하고 논쟁한다. 존중은 승복이 아니다. 그러나 티격태격하는 말들의 가장 위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놓여 있다. 허세 없는 소통은 아름답다. 자신의 치부마저 주저 없이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이상적인 관계란 결국 스스로를 조금도 가장하지 않고서도 상대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관계일 테다.

셀린은 사랑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 이 영화의 엔딩은 절묘하게도 그 바람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셀린은 그저 자기 집에서 평소 취미대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아무런 가장도 없이. 그런데 그 모습이 제시에게도 관객에게도,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운 장면이 된다. 좋아하는 가수를 익살스럽게 흉내 내며 아이처럼 노는 모습은, 자신을 완전히 무장해제하고서도 아무 문제가 없을 상대를 둔 사람만이 지니는 순수함으로 비친다. 가장 현실적인 순간이 가장 낭만적인 순간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지도
「3부작」 지도›
사람
이 감독을 더 보고 싶어5편›
이 배우를 더 보고 싶어2명›
소재
운명적인 짝을 다룬 영화가 궁금해7편›
기타가 나오는 영화15편›
헤어진 연인을 다룬 영화가 궁금해17편›
자전적 요소가 있는 영화가 궁금해20편›
평생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궁금해25편›
작가가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46편›
결혼을 다룬 영화가 궁금해46편›
기자가 나오는 영화가 궁금해54편›
춤이 나오는 영화가 좋았어71편›
프랑스가 배경인 영화를 더83편›
부부 이야기가 좋았어97편›
사랑 이야기를 더 보고 싶어149편›
속편이 궁금해18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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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리뷰에서 함께 이야기한 영화3편›
음악·촬영
촬영 · Lee Daniel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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