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영화를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난 이 영화가 좋다. 글을 쓰는 지금, 영화를 본 지 일주일이 되어 가지만 이 영화의 장면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상영된다. 원색의 예쁜 색감들, 의미 없는 수다들. 셀로판지에 씌운 듯한 필터. 총천연색의 색감에 더한 장 폴 벨몽도는 무적과도 같다.
희미한 내러티브지만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은 소통의 어려움과 배신이다. 페르디낭은 자신의 현 연인을 배신하고, 마리안은 자신의 연인을 배신하고 함께 도망친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이 그들이 생각한 대로 풀려가진 않았다. 하고많은 것 중 둘의 대화에서부터 그랬다. 그는 그녀를 텍스트로 바라보고, 그녀는 그를 느낌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페르디낭은 자신을 틀린 이름인 ‘피에로’라고 부르는 마리안을 계속 짚고 넘어가지만, 마리안에겐 그가 ‘페르디낭’이 아닌 ‘피에로’라는 이름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렇게 부른 것일 테다. 그 감각의 어긋남은 곧 삶의 어긋남으로 이어졌고, 마리안은 또다시 새로운 연인을 만나며 페르디낭을 배신한다. 결국 페르디낭은 그들을 살해하고 만다.
모든 것을 달관한 채 얼굴에 두 겹의 다이너마이트를 두르고 불을 붙인 채 자폭을 시도하지만, 곧바로 후회하며 불을 끄려 발버둥치다 결국 폭사하는 페르디낭의 마지막은 황당하면서도 강렬하다. 폼생폼사로 연명하는 어떤 작품들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지면서도, 결국 끝까지 예측 불가능한 이 영화와 어울리는 엔딩이라는 생각이다.
목표도 없고 목적도 없으니 각 씬에서 그들이 뛰고 걷는 것에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장면들에서 그들이 움직이는 것만은 진짜라는. 내러티브에 갇힌 장치가 아닌, 정말로 어딘가에 사는 인간 같다.
우리는 누군가에겐 익명으로 불리우고, 누군가에겐 미치광이 피에로로 불린다. 누군가에게 불리우지 않고, 누군가에게 잘못 불리우고, 누군가에게 미치광이로 불리우는, 목적지도 없지만 매 순간 질주하는 청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