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내 매들린을 미행해줄 것을 부탁하는 스카티의 지인 개빈은 그에게 묻는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하냐고. 기능적으론 필요하지만 흐름적으론 사뭇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하는 오프닝에서 스카티가 추격하는 범인과, 개빈의 아내 매들린은 사실상 이 영화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리고 <현기증>은 그 두 존재가 영화의 모든 순간의 동기로 작용하는,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하는 영화다.
입에서 눈에서 나선형의 이미지로, 그리고 불가해한 거대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음악까지. 오프닝에서 이 영화는 히치콕의 어떤 결의를 보여주는 것 같다. 특히 나선형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집요할 정도로 등장한다. 매들린의 금발 머리가 묶인 형태가 그렇고, 차에 탄 채 매들린을 쫓는 스카티의 추적 동선이 그렇다. 히치콕의 다른 영화들처럼 스피디하고 경쾌하진 않지만, 나선형으로 상징되는 몽환적이고 최면적인 시의 리듬은 독보적일 정도다.
매들린(쥬디)가 방문하는 꽃집과 묘지, 미술관. 문을 통해 만나는 순간 전혀 다른 공간의 연출이 실로 놀랍다. 붉은 색과 녹색이란 반대되는 두 가지 색을 충돌시키고 전이시키는 방식도 치밀하다. 호텔에 들어간 후 사라지고, 금문교에 빠진 후 자신의 행적을 기억하지 못하고 급기야 정신 불안정 증세를 보이는 매들린이 등장하는 초반부의 미스터리함도 좋다.
무엇보다 <현기증>의 주인공 스카티는 히치콕의 필생의 테마들이 집약된, 정신분석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다. 미행이란 업무가 관음의 쾌락으로 이어지고 자신이 구해준 그녀에 대한 과한 영웅심리와 구원환상의 충족을 느끼는 스카티의 섬짓한 집착이 눈에 뜬다.
그가 사랑한 매들린은 사실 쥬디였음에도 스카티는 진정 "매들린"을 사랑한 것이 아닌 '매들리의 모습'을 사랑했기에, 죽은 매들린의 생전 모습을 쥬디에게 그대로 덮어씌우려는 스카티의 광기 넘치는 모습은 분명 네크로필리아적 은유의 산실이다. 고소공포증에서 시작된 죄의식, 현기증을 이기지 못해 다시금 발현된 죄의식, 마지막까지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스카티의 모습은 <현기증>이 가장 비극적인 히치콕의 영화 중 한 편이 된 까닭일 것이다.
영화를 흔히 종합 예술이라 이름짓는다. 실제로 영화는 배우의 연기, 이야기, 카메라의 촬영, 음악, 감독의 예술적 시도 등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결과물이다. 예술은 정량화할 수 없고 평가의 대상이 아니지만, 영화를 완성하는 수많은 영역들에 이 영화를 비추어 봤을 때 과연 어떤 부분에서 모자람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를 이제 고작 2번 봤지만, 앞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될 때마다 새로운 지점들에서 감탄을 하게 될 것만 같다. 히치콕의 최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