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 사이로Through the Olive Trees

1994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이란, 프랑스
올리브 나무 사이로 포스터
104분 · 드라마 · 로맨스 · 전체 관람가 · 출연 محمدعلی کشاورز, Farhad Kheradmand, Zarifeh Shiva, Hossein Rezai · 음악 Heinz Holliger · 촬영 Hossein Jafa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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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지나간 이란 코케 마을에서 영화 촬영이 진행된다. 감독은 젊은 신혼부부 역을 맡을 두 명의 아마추어 배우를 캐스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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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층위를 끝없이 겹쳐놓으면서도, 결국 가장 작은 진심 하나가 스크린을 뚫고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는 두 개의 오프닝이 있다. 먼저 첫 번째 오프닝은 '모함마드가 감독하는 <그리고 삶은>의 메이킹필름'(이하 A)의 감독 모함마드가 등장해 이것을 A라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두 번째 오프닝은, 스크립터 시바 부인이 테헤레의 집으로 향하다 어떤 남성을 태우고 가는 아주 평범한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번째 오프닝을 주목해 봐야만 하는 것이다. 이 씬에 담긴 평범한 영상과 사운드에는 이미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흔드는 대단한 혼돈이 담겨 있다. 우선 동승한 남성은 <내 친구의 집>에서 선생 역할을 맡았던 실제 선생이라고 한다. 그가 실제로 선생님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역시 키아로스타미가 본작에서 다시금 설정한 배역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듯 무엇이 '리얼'인지 모르는 대사의 내용과 함께 등장하는 영상은 다소간 'plain'한 차 전방의 풍경들을 계속해서 비춘다. 원테이크로 촬영된 이 장면은 어쩌면 가장 조작 없이 그 순간 그 현장을 담은 풍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장면이 이 '영화'라는 포맷 아래 있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미리 조작해 놓은 공간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원테이크의 촬영을 위해 일정 공간을 출입 통제하고 그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이후에 촬영되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않는가.) 다소간 지리한 대사와 영상이지만 이 오프닝은 이 영화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할,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미리 귀띔해주는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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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메이킹 필름(다큐멘터리)의 작법으로 진행하던 영화는 대뜸 대단히 '무비'스러운 작법인 플래시백을 들이민다. 타헤레 가족 묘지에 찾아갔던 호세인의 순간을 설명하는 플래시백. 사실 직전에 호세인이 스스로 차 안에서 이미 설명한 내용이기도 하며 영화의 톤과 흐름에도 맞지 않기에 언뜻 '실패한 숏'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지리한 대사가 이어지던 와중 마치 다른 시공간에서 틈입한 듯한 말이 들려온다. "컷! 거기서 뭐하는 거야! 우린 촬영 중이야!" 호세인의 모습이 카메라 배경에 걸리니 이리 나오라는 스태프의 말. 그 순간은 A의 순간 중 하나였던 것이다. 호세인이 묘지에 갔던 그 순간은 영화 촬영장에서 있었던 또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스태프의 저 말은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A와 '호세인 이야기(이하 B)'라는 두 이야기가 투트랙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라는 신호와도 같은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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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는 A가 리얼, 즉 정말로 키아로스타미의 전작의 메이킹필름을 찍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 촬영 도중 멈추는 배우와 감독이 대화할 때의 명백히 '설정'된 클로즈업, 또한 이동 중 걸림돌이 된 공사 현장에서 인부와 대화할 때의 시바 부인과 그 간의 (예상치 못한 실제 상황이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대단히 계획된) 숏-리버스 숏 등이 그 증거다. B 또한 A의 일원으로 들어오기 전의 호세인의 모습을 잡은 장면들이 있기에 (플래시백의 장면) 우리는 B의 이야기 역시 키아로스타미가 구성한 '픽션'의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겠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A가 리얼이 아님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삶은>이라는 영화를 키아로스타미가 찍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그 영화 역시 키아로스타미가 실제로 그 지진의 현장을 찾았다는 실제 사실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의 역할 배우와 자신 아들 역할 배우를 두어 다시 만들어낸 '언리얼'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결국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알고 있는 희미한 팩트 한 가지는 감독이 <그리고 삶을>이란 작품을 찍었었다는 것 뿐이며, 그 외엔 얽힌 구조의 '거짓'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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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로스타미는 자신의 전작을 부정하는 방식을 취하며 그것을 원료로 삼아 본작의 동력으로 이용한다. 시바 부인이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초반의 장면에서 우리는 놀랍게도 전작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끝내 만나지 못했던 두 소년 아흐마드와 네마자데를 발견하게 된다. 반갑고도 당황스러우며 한 가지 질문거리가 생기는 것은, 우리는 누구의 안위를 걱정했던 것일까? 바하크 아마드 푸와 아마드 아마드 푸의 안위를 걱정했던 것일까? 아니면 아마드와 네마자데라는, <내 친구의 집>에 등장한 (껍데기)인 배역의 안위를 걱정했던 것일까? 이후에도 A가 이어질 때 모함마드와 스태프 뒤의 공간에 두 아이들은 불쑥 등장해 A의 현장을 구경한다. 두 아이가 안전할까? 라는 질문으로 내내 달려갔던 키아로스타미의 전작을 그는 스스로 부정한다. 우리는 <그리고 삶은> 영화 자체는 픽션임을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몰입을 하며 그 영화를 봤단 말이다. 비록 <그리고 삶은>이 실제를 재구성한 영화였기도 하지만, 버젓이 있는 아역의 존재는 <그리고 삶은>을 허구이자 가짜라고 폭로하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지루하게 계속되는 <그리고 삶은>의 특정 장면 촬영 순간들 역시 그것을 방증한다. 이란의 현장들을 속속들이 담은 다큐멘터리와 같은 생생한 작법을 무기로 했던 <그리고 삶은>이 실은 수십 번 재촬영한 가짜의 결과물들이라며 감독은 말한다. (물론 전작이 정말로 이렇게 촬영되진 않았을 테다. 이 장면들은 감독이 본작을 만들기 위해 전작의 역사를 과장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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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영화가 던지는 주제는 단순하다. 창작,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진실이 아니다. A의 감독 모함마드는 호세인과 갈등을 겪는다. 극의 대사 중 자신의 가족 25명이 죽었다는 대사를 하는데, 모함마드는 65명이 맞는 '대사'라며 다시 말할 것을 요구한다. 호세인은 그렇지만 25명이 죽은 것이 '사실'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되묻지만 모함마드는 이를 굽히지 않는다. 테헤레의 대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는데, '호세인 씨'라는 대사를 말해야 하는 테헤레이지만 그곳의 여성들은 남편에게 '씨' 자를 붙이지 않기에 계속해서 '호세인'이라고 말해 NG를 만드는 그녀다. 자신이 말하고픈, 혹은 '진실에 다가감'을 위해, 영화는 현실과 사실을 입맛대로 바꾸어도 되는 면죄부를 가지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부정적 의미의 가짜는 아니지만, 영화는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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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에 얽혀 있는 B에 존재하는 씁슬한 아이러니의 순간이 있다. 테헤레와 가깝게 있고 싶은 일념 하나로 A의 현장에 뛰어든 호세인은 A의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 테헤레를 향한 자신의 순정을 절절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테헤레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모함마드의 말로 A가 다시 시작되자 (말하자면 B 위에 A가 입혀지자) 테헤레는 호세인과 막힘 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심지어 그 순간은 호세인이 지금껏 원하던 부부의 형태로 대화를 나누는 순간으로 변모한다. (심지어 역할의 이름도 본명인 호세인, 테헤레이다. 물론 이는 키아로스타미의 전작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가 다큐멘터리의 형태를 '취한다'는 '맥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짜의 레이어를 한 겹 '더' (호세인의 관점에선 한 번) 씌워야지만 그녀와 대화할 수 있다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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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 우리는 좌절에 가까운 감정과 함께 깨닫고 질문한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진실일 수 없다고. 그렇지만 그 한계 속에서 '진실'한 순간을 목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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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촬영이 끝나자 테헤레는 다시 호세인을 밀어내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혼자서 길을 떠난다. 호세인은 테헤레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대답이 없긴 하고, 이마저도 키아로스타미가 만든 픽션의 순간이지만, 레이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진실하며 퓨어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컷과 레이어가 없이 계속해서 지켜보는 익스트림 롱숏의 마지막 엔딩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전작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엔딩과 같은 방식의, 키아로스타미라는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방식이기 때문에 우선 이 엔딩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두 편을 감독한 키아로스타미의 시선이다. (말하자면 전작과 같은 형태의 엔딩을 만들어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 엔딩은 나의 시선이 들어 있습니다." 라며 강조하는 듯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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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이 시선은 호세인을 따라온 모함마드 감독의 시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삶은>을 촬영하는 모함마드가 촬영 도중 관계의 이슈로 인해 갈등을 겪는 두 배우를 바라보는 A의 연장선상 격 관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선은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호세인과 테헤레의 관계를 러닝타임 내내 지켜 본 관객의 시선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창작'이라는 형태로 인해 근본적으로 허구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지만, 영화의 감독/영화 속 인물/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과 마음이 일순간 (호세인을 응원하는) 하나로 모인다면, 그것은 한계를 가진 영화라는 매체에서 만들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진실'한 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감독은 말하는 것이다.

2025.12.1 재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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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배경인 영화가 궁금해17편›
영화 속 영화(극중극)25편›
영화가 영화를 말하는 영화26편›
영화 만드는 이야기가 좋았어42편›
극중 배우가 나오는 영화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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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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