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라는 장르를 규모를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까.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처럼, 거대한 스케일들과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것을 '블록버스터 판타지'라 명명하고, 비교적 소규모의 자본을 갖고 아기자기하지만 독특한 창의력과 개성으로 무장한 영화들을 '아트하우스 판타지'라 명명할 수 있을까.
전자의 영화들은 그 소재가 할리우드의 자장 아래서 거대한 볼거리들을 제공해 소위 말해 '호불호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허나 후자의 경우 심대한 비판점이 늘 따라붙는다. 때론 조악해 보이는 이미지들과 특수효과들, 유치하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들. 왜 판타지를 고집하는가? 라는 질문이 그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적인 것'이 무엇일까, 나는 영화 속에서 '마법'을 일으킬 때가 영화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작게는 순간을 봉인하는 슬로우 모션 같은 기교에서, 크게는 정말 현실에 없을 판타지 같은 소재나 순간들이 있을 때 말이다. 그렇다면 팀 버튼과 같은 감독들은 '피터팬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한 유아기적 집착을 가진 감독이 아닌, 가장 영화적인 영화를 만드는, 시네마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감독일 것이다.
가위손은 마이너리티다. 그가 탄생한 곳은 무채색의 공장이었으며 그가 자란 곳은 세상과 격리된 언덕 위 저택이었다. 파스텔 톤 형형색색의 마을로 내려왔을 때 그곳의 주민들은 신비스런 그를 반겼지만 이내 자신들과 다른 그를 경계하고 배척했다. 또한 가위손은 스스로의 특징 때문에 오해 받는다. 누군가를 지켜주려 해도 자신의 날카로운 손이 의도치 않은 피해를 상대방에게 준다. 누군가를 쉬이 지켜줄 수 없고, 누군가를 안아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중반까지 가위손과 킴 간의 로맨스는 부차적으로만 복무한다. 에드워드 자신의 손이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 장애물이 될 것이란 걸 스스로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영화는 둘의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저 다가갈 수 없는 에드우드의 신세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드우드의 진심이 닿는 순간부터 영화는 최상의 낭만을 전달한다. 크리스마스에 얼음으로 조각을 하며 킴의 머리 위로 눈송이를 뿌리는 장면은 이 영화가 판타지여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것 같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그 순수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임을 봉인하는 엔딩 장면도 잊지 못하겠다.
클로즈업은 숏에 꽉 찰 정도이고, 정통적으로 안정적인 구도들은 이 영화에선 무시된다. 제도권 밖의 영화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팩 가정은 지나치게 친절하고, 주인공 에드우드마저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시종 보여주지만, 그 모든 것이 팀 버튼의 이 순수한 세계 안에서라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