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은 데미언 셔젤 필모그래피의 한 분기점 같다. <바빌론>에는 <위플래시>의 광기와 <라라랜드>의 정신과 주제, <퍼스트맨>의 야망이 모두 들어있다. 셔젤은 마치 <라라랜드>를 만들기 위해 <위플래시>를 만들고, <바빌론>을 만들기 위해 <라라랜드>를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스케일이 우선 눈을 사로잡고, 이와 동시에 이 제작비를 가지고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만드는' 영화가 탄생한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파라마운트는 대체 셔젤을 어느 정도로 신뢰하는 것일까. 유성 영화로의 과도기를 다루는 부분이나, 후반부 제임스 맥케이의 등장 시퀀스에선 너무 우악스럽고 위악적인 부분들이 있다. <바빌론>은 분명 셔젤의 제멋대로 만든 영화이다.
브래드 피트는 마치 <바스터즈>의 알도 중위 같다. 또한 이 영화에서 마고 로비는 마치 마릴린 먼로의 아우라를 보는 듯 했다.
예상보다 훨씬, <바빌론>은 <사랑은 비를 타고>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무성영화의 시대에서 유성영화의 태동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배경, 비상과 전락이 분명한 스토리,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까지. 다만 다른 점이라면 <사랑은 비를 타고>가 그 시대를 회고하는 낭만적 시선을 함유하고 있다면 <바빌론>은 혼란의 시대 속 어두운 면과 절망적인 순간들을 포착한다.
할리우드는 광기의 현장이다. 돈 월컨의 파티는 더러우며 선정적이고 무법에 가까운 축제였다. 영화의 촬영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엑스트라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일제히 파업하고, 그 엑스트라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촬영 중 다치기 일쑤에 심지어 사망하기까지 하며, 거대한 자본이 움직이는 프로젝트들임에도 일처리는 상당히 '주먹구구식'으로 흘러간다. 여분의 장비가 없어 촬영이 딜레이되기까지 하는 요즘으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순간들의 연속.
이렇듯 할리우드는 저열한 광란의 왕국이었다. 허나 이와 동시에 할리우드는 낭만과 마법이 실현되는 꿈의 공장이었다. 잭 콘레드의 키스씬에서 그의 몸에 앉은 나비의 장면이 그렇다. 술에 취해 헤롱거리며 그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랫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민폐를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카메라 액션이 떨어지고 나선 놀랍게도 마법같은 순간의 주인공이 된다. 기계적이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촬영장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기적같은 일순간을 포착하고, 그것들은 프레임 안에 담겨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마치 이것이 영화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듯.
한편으론 엔딩에 있어 비판하고 싶다. 셔젤의 엔딩은 항상 잊을 수 없다. 허나 한편으론 그가 엔딩에서 행하는 방법론이 오만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는 항상 관객에게 획일화된 감상을 강요하는 것만 같다. 이 순간의 모든 결과값을 다 정해놓고, 그것을 '느끼지' 못한 관객은 멍청이가 되는 것마냥. 물론 셔젤은 자신의 의도대로 항상 성공한다. 그러나 한번쯤은 그 결과보다 그 과정에 집중해보고 싶다. 그렇기에 앞선 셔젤의 영화들보다 더 엘리트스럽고 마니아스러운 이 영화의 엔딩을 보며 느끼는 감동의 크기가 제각각 달랐을 것이다. 의도는 명확했고 나 역시 엔딩에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음을 숨길 수 없지만, 영화의 역사를 비추면서까지 하는 셔젤의 방법론은 한편으론 과하다.
그럼에도 (저 액자 구조의 몽타쥬 씬을 제외하면) 매니를 기어이 극장에 앉혀 <사랑은 비를 타고>를 마지막까지 절묘하게 활용하는 엔딩은 발상부터 진정성에 있어서까지 놀랍다. <사랑은 비를 타고> 속 시대가 내가 살던 곳이고, 그들이 겪었던 우여곡절 시행착오가 내가 겪었던 것이니. 내가 그곳에 있었고 내가 그곳에 살았다는, 인생을 회고하는 눈물의 감동적인 엔딩은 <시네마 천국>의 그것과 함께 역사에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