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박찬욱 영화의 특징은 무국적성이었다. (<JSA>, 혹은 <아가씨>와 같은 시대극은 차치하고) 그의 영화는 별다른 국적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복수는 나의 것>부터 <헤어질 결심>까지, 그의 영화들의 공간이 한국이 아니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감독의 그러한 특징은 말 그대로 특징에 머무르고 최소한 개인마다의 호불호의 영역에 머무르지, 모두가 그것을 단점의 영역에 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작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의 영화 중 가장, 어쩌면 최초로 이 땅에 발 닿아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본작은 세상과 이격된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작에는 <올드보이>의 실내나, <박쥐>의 행복한복점, <헤어질 결심>의 집과 같은 곳이 없다.
그렇기에 감독의 무국적성이 본작에서는 오히려 단점처럼 느껴진다. 본작의 이야기는 필연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국적성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프닝 씬은 이상하게도 박찬욱스럽다. 이 한 씬은 감독의 말대로 한 편의 단편영화로 볼 수 있을 만큼 완전한 형태를 가졌지만, 너무나 양식적이고 균질하다. 촬영부터 미술까지 멋진 때깔의 장면들이지만 이 세상의 가정 같지가 않다. 정형화된 대사도 그렇지만, 감독의 각 잡힌 연출들이 되레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선 세상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선거철 정치인들이 소탈한 이미지를 어필한답시고 수행원들과 함께 시장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느껴지는 위화감과 닮았다.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이나 고전 프랑스, 이탈리아 거장들을 연상케 하는 카메라워크가 그 자체로는 인상적이지만, 과연 ‘이 이야기’에 최선으로 어울리는 형태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본작은 선명한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OLD vs NEW. 주인공 만수는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제지 회사에 근속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해고당하고, 새로 면접을 본 회사는 같은 제지 회사이지만 기계가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환경이다. 종이라는 물건 역시 정보화 시대와 인공지능 시대인 현재엔 과거의 유산이다. 여정을 따라가며 만수는 자신이 닮았거나 혹은 미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를 존재들을 마주하고, 부친의 기념품으로 남은 낡은 권총으로 그들을 제거해 간다. 올드 보이가 자신과 닮은 올드 보이들을 제거해 간다고 해서, 그가 곧바로 뉴 보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올드 보이는 여전히 올드 보이일 뿐이다.
블랙 코미디적 요소도 들어 있지만, 보다 정확히는 대놓고 웃기려는 슬랩스틱에 가깝다. 바람을 의심하며 미리와 만수가 언쟁할 때 외모를 칭찬하는 만수에게 똑같이 화답하는 미리의 대사는 실없는 웃음을 부른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흘러나오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장면은 올해 한국영화 중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 될 법하다.
결국 본작은 표면적으론 해피엔딩을 맞지만, 그 속내는 씁쓸한 비극을 담고 있다. 모든 걸림돌을 제거한 뒤 새 회사에 입사한 만수의 업무는 단순히 기계들이 잘 작동하는지 감시하는 것뿐이다. 장인으로서, 전문가로서의 입사가 아니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엔딩에서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만수의 모습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또 다른 끝의 직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