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테렌스 맬릭의 황홀한 대답. 맬릭의 최고작
느리고..... 러닝타임은 길고.... 이런 영화가 왜 좋냐는 질문엔 길게 설명을 하기가 참 난감하다. 이런 영화는 '느끼는' 식의 감상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는 테렌스 맬릭의 연출 특징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받아들이는 감정이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테렌스 맬릭의 빠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 영화가 마음에 들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리고 영화를 끝까지 본 후 나는 그에 대한 믿음이 더 공고해졌다.
나에게 맬릭의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영상에선 항상 생생히 살아있는 물성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을 타르코프스키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도 느꼈었는데, 셋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촬영 현장에서의 순간적인 생동감을 중시하는 감독들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맬릭의 카메라는 필연적인 방향으로 끌려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강물과 같이 하나의 총체로서 움직인다.이 영화를 두고 미국의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말하길, "영화 속 사건들은 마치 그 순간 처음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라는 언급을 하였는데 정말 그렇다. 맬릭의 영화는 서사의 텍스트를 읽는 대신 공간의 공기를 담아낸다. 한편으론 이러한 방식이 경제적이지 않다 라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공산품의 '합리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맬릭의 카메라가 좋다.
모든 감독들에게 있어, 마음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는 아마도 그들에게 닥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테렌스 맬릭의 영화가 인물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연출은 정말 놀랍다. 영화를 가득 채우는 나레이션과 비논리적인 이미지들의 인서트는 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산문처럼 그려낸다. 세 주인공의 내면이 교차할 때 숏의 길이나 카메라의 공간감은 치밀하고 절묘하다.
<뉴 월드>는 테렌스 맬릭의 연출력이 정점에 달한 영화처럼 나에게 보인다. <트리 오브 라이프>부터만 해도, 맬릭은 타인과의 소통을 오롯이 차단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듯한 폐쇄성을 보여주는 듯해 여러모로 아쉬웠었다.
맬릭이 <뉴 월드>에서 보여준, 인물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전작인 <씬 레드 라인>에서도 보여준 방식이었다. 다만 <씬 레드 라인>은 전장이라는 배경의 탓도 있었겠지만 현장과 인서트 숏의 속도감이 차이나 간간히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연출의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뉴 월드>에선 맬릭의 그러한 시행착오가 끝난 이후 만들어진 마스터피스다. 모든 인서트가 완벽하고 감정을 이끈다. 전작에서 느꼈던 연출의 이물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테렌스 맬릭의 최고작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그의 초기작인 <천국의 나날들>을 언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 또한 지금까진 그렇게 생각해왔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해당 결정을 재고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심 끝에 뽑는다면 지금은 이 영화가 맬릭의 최고작으로 뽑겠다.
여담으로 영화가 상대적으로 평점들이 낮기에 개인적으로 의아했었는데 찾아보니 카이에에서 이 영화를 00년대 베스트 10에 포함시켰었다고 한다. 역시 내 감상은 틀리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