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청소부로 일하는 장년 백인 여성과 모로코 태생의 청년 근로자 알리와의 사랑 이야기다. 그들의 시작은 사랑의 이끌림으로 인함이라기보단 어떤 '대화 상대'로서의 시작이었음이 분명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 독일 사회의 뿌리 깊게 자리잡은 인종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편견없이 사랑하게 된다.
파스빈더의 영화에는 두려움이 들어있다. 무엇보다 파스빈더는 게르만 민족의 우등함을 내세워 세계를 지배하고자 했던 히틀러로 시작된 전쟁의 패배 이후에도 독일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던 인종적/문화적 자존심의 실태를 경계하고 고발한다. 그들은 전쟁이 종전된 지 수 십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순혈 게르만인'을 솎아내고 유색 인종과의 접촉을 죄악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의 경계는 선민 의식인 한편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기어이 에미와 알리에게도 전염되어, 에미에게도 모두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시선을 느낀 알리는 그녀를 떠나고, 알리를 잃은 에미는 세상 가장 순수한 사랑을 가졌던 숙녀에서 또다시 늙은 암탉으로 여겨진다. 그 두려움은 또한 유고에서 온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또다른 차별의 구도로 대물림된다.
카메라의 사용이 미묘히 다르다. 씬 안에서의 포커스 on/out이 자유로운 동시에, 한 숏의 인물들에게 마치 그 프레임 속이 그들에게 허락된 모든 공간인 듯,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프레임은 절대적으로 불가침한 권능을 부여받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동시에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 공간을 점유하는 인물의 정서를 반영하는 듯 '감정적'이다. 어떤 줌 아웃은 공간에 불멸성을 선사하고 어떤 줌 아웃은 일순간 불안을 제공한다.
카메라라는 1차적 프레임에 더해, 공간 안에서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2차적인 프레임을 구축한다. 그에 더해 아마도 영화 역사상 '정적'을 가장 무시무시하게 사용한 영화일 듯, 감정적인 접근을 사용하지 않고도 일견 능청스럽게도 느껴질 만큼 명백히 가두어 버린 인물들을 '외면할 수 없게' 박제시킨다. 그 외면할 수 없는 정적의 순간엔 숨이 막혀버릴 것만 같이 지독하기만 하다. 분명 역사의 병폐를 다루는 모범적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론 파스빈더의 끈질김이 섬뜩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