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헤인즈 특유의 채도 낮은 색감은 이제는 일종의 매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영화에선 차분한 영상과 편집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일생에 한 번 있을 법한 강렬한 이야기가 영화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시간들처럼 얼핏 보이는 하루하루 중에서도 균열의 조짐은 관찰된다.
건장한 체구에 요동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였던 조는 누구인지 모를 인물과 그레이시 몰래 연락을 주고받고, 그러면서도 상황을 뒤엎진 못하며 오히려 아들보다도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종국에 이르러 다시금 스스로의 건재함을 말하는 그레이시마저도 한편으론 조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을 관찰하는 인물인 엘리자베스라는 인물도 관찰할 여지가 보인다.
관객은 엘리자베스와 함께 간다. 관객은 그녀의 시선으로 부부를 관찰하게 된다. 그들이 함께 있었던 펫샵에서 그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상상해보게 되고, 엘리자베스의 행동처럼 내가 그레이시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 지점에서 엘리자베스와 그레이시는 동일인이자, 다시 말해 두 개의 페르소나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의 하나인 <페르소나>를 명백히 오마주한 거울 앞 장면도 그렇거니와, 묘하게도 엘리자베스의 행적과 외형은 그레이스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한다. 조와 엘리자베스가 독대할 때마다 이상한 기류가 흐르던 까닭에 그 이유도 있었으리라.
인간은 타인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그레이시가 자신의 건재함을 어필하자 거의 무너져 내리는 엘리자베스의 표정을 떠올리자. 촬영 중 점점 더 진짜 같아지고 있다며 한 번만 더 해 보겠다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그래서 완벽주의가 아닌 집착이다. 그래서 본작의 엔딩은 하나의 좌절이다. 고작 한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 보려는 것마저도 이렇게나 멀고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