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립쇼를 가득 채우는 네온색의 빛들. 여성의 누드가 '다수' 등장하고 그들의 업무가 계속된다. 객관적으로 <아노라>는 매우 자극적인 영화다. 러닝타임의 초중반까지 영화는 살색으로 가득하다. 놀라운 지점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몸의 대화'는 어떤 선정성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무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수수한 연기와 편집 덕분이었으리라.
션 베이커의 가장 큰 장점은 소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떤 색안경이나 과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을 동정하지도 않고 정죄하지도 않으며, 그들의 현실과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응시할 뿐이다. 다만 그들이 선인이건 악인이건 관계없이, 인류를 바라보는 휴머니즘의 시선은 션 베이커의 영화에서 빼먹지 말아야 할 요소이다. 그래서 그저 '취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밑바닥에서 가장 꼭대기로 올라온 신데렐라의 스토리기에, 청혼에서 24시간 드라이브 창구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퀀스는 너무나도 낭만적이게 연출된다.
신혼의 순간들이 짧게 지나간 이후 이반 아버지의 '직원'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영화의 톤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전형적인 멜로의 장르처럼 보였던 영화는 스리슬쩍 포커스를 멜로에서 노동자들에게로 돌린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기의 영화들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의 로드 무비, 거기에 블랙 코미디 한 스푼. 말하자면 3부로 나눌 수 있는 본작의 이야기에서, 한가운데 위치한 2부의 내용은 시간적으로도 찰나의 순간이자 멜로의 이야기를 1부에서부터 따라왔던 우리에겐 '불필요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자면 그 찰나의 소동을 러닝타임에 한가운데에 위치시킨 까닭은, 그것이 본작의 정수이자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이기에 그러한 선택을 감독이 한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수 천 수 만년의 타임라인 중에서, 찰나와도 같은 여정을 영화의 한가운데에 위치시킨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정수는, '오디세이'를 뜻하는 것일 바로 그 3부에 있기 때문이다. <아노라>의 정수 역시 한가운데 놓인 에피소드에 있을 것이다. 타자화, 대상화. 타인을 특정 집단과 특정 소속으로 칭하고, 타인이 소속한 집단의 특성으로 그를 판단하고, 타인의 타고남을 가지고 그를 판단하는. 그래서 <아노라>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백조가 되기 전까지의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일 것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함께 올해 최고의 엔딩일 것이다.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엔딩의 뉘앙스. 나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다가왔다. 이고르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가 보여준 호의에 보답하는 방식으로 하는 아노라 그녀의 성관계. 그러나 이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고르에게도 이전과 같이 사무적으로 행동을 보인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실망감에 의해 무너지는 아노라. 반면, 자신은 '사랑'이지만 상대방이 사랑이 아직 아닌 것을 깨닫고는 멈추는 이고르. 그럼에도 자신의 사랑을 담아 그녀를 안아주는 이고르. 무엇보다 엔딩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짧게 추가하자면, 미키 매디슨. 그녀의 향후 커리어에서 이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과연 선보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위대한 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