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없는 남자>를 보면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프로필도 남아있지 않은 인물이라면 사회는 그를 도와줄 수 없으며, 그는 체계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없다. 사회는 그를 도와주지 않지만 일부 개인은 그를 도와준다. 세상은 일견 차갑고 일견 따뜻하다. 여지없이 엇나갈 희망 따위는 가지지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려 하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푸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남자의 아내가 연락을 보내왔다. 그의 실제 이름은 야코 루야넨. 북부 출신의 금속 노동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남자는 그 이름이 낯설다. 자 그럼 이제 남자는 아내와 이루마 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 아내를 찾아가지만 그녀를 만나고도 존댓말을 주고받는 어색한 사이. 이제는 남자의 역사 속에 이 여성은 의미가 없는 인물이다. 말하자면 남자는 더이상 야코 루야넨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 속 역사는 야코 루야넨의 인생과는 전혀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루마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남자가 기억하는 것까지만 영화에서 관객에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관객이 남자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남자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와 동일하다. 그렇기에 극의 후반 남자의 정체가 공개되는 순간에도 관객은 그러한 '낯선 진실'을 주인공에 덛붙일 수 없게 된다. 즉 남자의 심리와 동화되는 것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리한 작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심한 연기 디렉팅은 역설적으로 진정성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엔 가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구조적으로는 정말 단순한, 두 사람이 함께 'My heart must do the crying'을 듣는 장면은 여느 영화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순수함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