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House of Hummingbird

2018 · 김보라 · 한국
🏆 청룡영화상 각본상
벌새 포스터
139분 · 드라마 · LGBT+ · 15세 이상 · 출연 박지후, 김새벽, 설혜인, 정인기 · 음악 Shin Ye-jun · 촬영 Kang Gook-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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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 중학생 은희는 방앗간을 하는 부모님 그리고 언니, 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온 가족이 자신들의 문제와 싸우고 있을 동안, 은희는 오지 않을 사랑을 찾아 섬처럼 떠다닌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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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0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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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포착과 편협한 봉합

영화의 첫 장면, 영화의 주인공 은희는 아파트 어느 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엄마를 부르며 말이다. 그러나 그 안에선 아무 대답이 없다. 문고리도 세차게 흔들어 보고 소리를 질러도 보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인 그 곳. 그러다 카메라는 고개를 들어 그곳의 호수 902호를 비추더니, 무언가 확신에 찬 걸음걸이로 은희는 한 층을 올라간다. 그리고 한 층 위 1002호의 초인종을 누르니 자연스레 문을 열어주는 은희의 어머니. 그리고 뒤로 물러나 1002호와 902호, 그리고 그 양 옆으로 펼쳐진 '똑같이 생긴' 여러 집들을 비추는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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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은희의 인생이다. (물론 공부를 잘 하지 못하고 성실하지도 않은 듯 보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도 잔잔한, 소위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는' 학생처럼 보이지만, 그녀에게도 혼돈이 있다는 말이다. 폭력적이고 향락을 즐기는 아버지, 공부는 잘 하지만 스트레스를 동생을 때리는 것으로 푸는 오빠, 엇나가는 언니. 학교에서도 다르진 않다. 마치 일제 시대의 관습을 보는 듯한 선생님의 '날라리 색출 작업'과 '제식 강요'. 그녀에게 있는 친구 지숙은 은희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지숙 또한 자신처럼 가족에게 학대를 당하는 아이었기에 서로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은희의 그 혼돈은 은희가 근본적으로 악한 인물인 까닭이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성보다는 획일화나 모듈을 고평가하는 이 사회의 특성으로 인해, 조금씩이건 크게건 그것에 알맞지 않는 변종들은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상처가 생기고 넘어지는 일들을 겪는 것이다. 한 '변종'의 인생에 있어 그러한 상처의 순간들은 때론 작게 때론 크게 찾아온다. <벌새>는 아직 중학생인 어린 소녀가 겪을, 세계의 프레임이 안겨주는 상처의 징후들을 면밀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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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은희의 학원 선생님 '영지'다. 영지 선생님은 앞서 간 사람처럼 보인다. 학원 원장이 말하듯 '잠적도 잘 하는 원래 그런 존재'로 여겨지는 별종. 어쩌면 은희가 자라면 영지 선생님처럼 될지도 모른다. 반대로, 영지가 은희를 아낀 까닭이 은희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호하고도 시니스러운 그녀의 존재는 본작에서 미스테리한 동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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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에 대한 논쟁의 연장선상으로 비판하고 싶은 지점이 생긴다. 본작이 어떤 영화들처럼 성별 간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만든 영화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본작의 모든 남성들이 무능하고 절대악은 아니며, 반대로 모든 여성들이 절대선의 인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주인공 은희가 겪고 있는 문제가 성별 간 갈등을 촉발시키기 위해 극단적으로 설정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가 결론으로 귀결하는 방향에 있어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짚고,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시작점을 잘 만들었지만, 보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그 해결책은 국지적이고 폐쇄적인 것으로만 닫아놓는다. 그것이 썩 이해되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문제에요!" 라며 이야기를 열고선, "내가 좋아하는 내 여자들과만 함께 할 거야!" 라는 식의 결말. 성수대교 사고와 연결짓는 것 또한 위험해 보인다. '보편화', '확장'을 위해 사고를 끌어온다는 인상만이 남는다. 그 결말은 <벌새>가 성장영화로서 한계를 드러내는 듯 하다. 2025년 아마도 한국 최고의 영화였던 <세계의 주인>과 비교하고 싶다. 나에겐 다음처럼 느껴진다. <세계의 주인>은 10의 상처를 9만큼 표현하는 영화이며 <벌새>는 7의 상처를 8만큼 표현하는 영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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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모두 차치하고서 이 영화의 미적인 성취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웨스 앤더슨이나 타셈 싱 같은 비비드한 색감의 비주얼은 아니지만, 마치 수채화로 그린 듯 자연과 가까이 있는 톤의 영화와, 과장되지 않은 인물들의 얼굴은 마치 대만 뉴웨이브의 그것을 목격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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