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빌>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찾아보니 <킬 빌>의 미술감독과 한 협업이었다고 한다. 비주얼이 고고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오랜만이다. 특히나 근자의 신작들 중에선 더더욱 그렇다.
위태로운 과거, 타고난 재능, 낮은 서열, 아치 에너미 같은 동갑내기 도련님. 사실 어쩌면 영화에 설정된 것들을 보자마자 이야기의 끝을 대략 유추할 수 있을 만하지만, 그 과정을 서술하는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긴 러닝타임만큼이나 긴 시간대를 다루면서, 예술 안에 있는 한 인간이 그 예술로 인해 어떻게 비상하고 전락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그러나 3시간에 달하는 이 러닝타임도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의 이야기 전개가 쫓기듯이 바쁘다. 러닝타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의 편집이 느껴지고, 숏과 씬 자체들은 너무나도 훌륭하지만, 감정연결이 부자연스러운 군데가 의식되고 매끄럽지 못한 편집 전환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첫 편집본이 4시간 30분 분량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감독판을 정말 보고 싶은 영화다.
가부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눈에 띈다. 가부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와 같은 관객들에게는 훌륭한 '소개' 영상이 될 법하겠다. 화려한 화장과 의상들이 무대의 시선에선 어떻게 보여지는지, 관객에게는 어떻게 비춰지는지, 또 그것이 무대 뒤에선 어떻게 준비되는지, 완벽한 예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말 다양한 각도에서 다뤄낸다. 이상일 감독은 이 가부키라는 소재를 서스펜스의 소재로 값싸게 활용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키쿠오가 처음으로 대형 무대에 섰을 때 영화는 그가 혹시나 실수하게 되지는 않을지를 두고 서스펜스의 순간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대와 의상 뿐만 아니라 '비무대', '비무대의상'의 공간도 영화는 중요하게 다룬다. 무대 밖에서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이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그것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역할을 하는가에 영화는 흥미로운 탐구를 보여준다. 여런 면모로, 예술의 웅장함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긴 러닝타임, 긴 시간을 다룬 파란만장한 이야기, 예술을 소재로 한 이야기, 두 남자의 이야기. <패왕별희>와 비교가 많이 된다. <패왕별희>가 역사 안에 있는 개인을 다룬다면, <국보>는 예술 안에 있는 개인을 다룬다. <국보>의 캐릭터들은 매력적이다. 절대적 악인도 없고 절대적 선인도 없다. 아들의 인생을 짓밟는 거냐며 키쿠오에게 눈물 섞인 화를 뱉는 사치코가 매정하게 보이지만 또 그녀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한다. 키쿠오의 재능을 시기하고 좌절한 끝에 도망쳤다가 가족을 위해 다시 복귀해 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안타까운 사고를 겪는 슌스케, '신분'의 한계를 딛고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결국 과거에 발목을 잡혀 전락했다 다시금 재기하는 키쿠오. 어떤 지점에선 슌스케가 악이고 키쿠오가 선처럼, 또 어떤 지점에선 반대로 보이게 된다. 인간은 너무나 다면적이다. 그리고 인간이 다면적인 까닭은 인생이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국보>는 예술을 완성하는 순간에 천착하는 예술가'들'을 다루지만, 그것을 일방적인 선으로 다루지 않는다. 피를 토하면서까지 "이제 내 무대인데 왜 막을 치냐!"며 거부했던 한지로의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그것은 결국 한 무대를 '망쳐버린 것'이라는 냉정한 시선을 직후에 첨부한다. 키쿠오가 이례적으로 이른 나이에 국보가 되었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을지 생각하라는 '그의 사생아'의 멘트 또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마지막, 진정한 예술의 '순간'을 얻으려 달려온 예술가만이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점을 영화는 마지막에 더하며,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신비스럽고도 가치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는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