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2018년작 <3개의 얼굴들>은 오프닝 시퀀스의 충격적인 영상으로 시작부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젊은 여성이 절망적인 메시지를 남기는 이 영상은 극도의 사실감으로 인해 이것이 실제 사건인지, 아니면 연출된 상황인지 관객에게 혼란을 안긴다. 영화는 이 영상을 '논픽션'으로 상정하고, 유명 배우 베나즈 자파리(본인 역)와 감독 자파르 파나히(본인 역)가 영상 속 소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이란의 외딴 시골 마을로 향하는 여정을 따라간다.
이 영화는 명백히 픽션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든다. 오프닝 영상의 진위 여부는 영화 내내 중요한 질문으로 남는다. 등장인물들은 영상이 조작되거나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하며, 관객 또한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선배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처럼 현실의 사건 위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히는 방식을 연상시키며, 동시에 감독 자신의 전작 <택시>처럼 감독 본인이 직접 등장하여 현실을 포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카메라의 배치나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분명 '설정된' 픽션임을 드러낸다. 계산된 숏 구성과 극적인 전개는 이것이 잘 '짜인'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연 배우 베나즈 자파리와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자신의 '본명'으로 등장하고, 영화 전반에 흐르는 생생한 현장감은 이것이 단순한 허구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이야기가 이란 사회의 현실을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파나히 감독은 이러한 다큐멘터리적 형식을 선택했는가? 일각에서는 오프닝 영상과 같은 민감한 소재를 영화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마치 파나히 감독이 비극적인 사건(설령 그것이 연출된 것이라 할지라도)을 영화적 소재로 소비하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 선택은 오히려 영화의 주제 의식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될 수 있다. 파나히 감독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영화가 다루는 문제들이 비단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란 사회 어딘가에 실재하는 현실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3개의 얼굴들>은 전작 <택시>보다 더 깊숙이 이란 사회의 현실, 특히 외딴 지역에 존재하는 보수적인 관습과 여성 억압의 문제를 파고든다. 이야기의 발단이 된 영상 속 소녀(마르지예 레자이)는 배우를 꿈꾸지만, 그녀가 사는 마을은 외부 세계와 거의 단절된 채 낡은 전통에 얽매여 있다. 이곳에서 여성은 때로 생존을 위해 '소비'되는 존재로 여겨지며, '영화배우'라는 꿈은 용납되기 어려운 사치다. 영화는 자파리와 파나히의 여정을 통해 이러한 현실을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며, 은퇴한 원로 여배우의 존재를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여성 예술가들의 수난을 암시하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란 마을의 모습이 실제 존재하는 특정 공간의 현실인지, 아니면 파나히 감독이 여러 현실을 바탕으로 창조해낸 가상의 공간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3개의 얼굴들>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와 유사한 일들이 이란 사회의 어느 곳에선가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는 점이다. 파나히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침묵 속에 가려진 진실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3개의 얼굴들>은 다큐멘터리적 사실성과 극영화의 서사성을 정교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자신과 동료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로드 무비 형식을 통해, 한 편으로는 영상의 진위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펼쳐나가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이란의 외딴 지역에 존재하는 여성과 예술가에 대한 억압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의도적으로 유지되는 허구와 현실 사이의 모호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크린 속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들을 현실 세계로 확장하여 고민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