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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는 게 어려워요”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 뭄바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에겐 해결되지 않는 사정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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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반세기 뒤의 <밀레니엄 맘보>; 삶이 어두울수록 작은 희망의 빛은 더욱 또렷이 빛난다
나에게 인도 영화는 제3세계 영화다. 할리우드와 한국의 영화를 제1세계,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권과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권을 제2세계로 둔다는 나만의 기준을 세운다면, 그 밖의 곳들은 제3세계로 분류해야 되겠다. 제3세계의 영화들은 나에겐 아직 낯설다. 그 까닭은 물론, 절대적으로 본 수가 적기 때문이다. 당연스럽게도 그 곳들의 영화들 역시, 이 지구에 발 디디고 있는 이상 본질적인 정서와 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 스푼씩 그 곳의 문화가 첨가되는 것일 테다. 그래서 <우빛상모>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치 않을 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껏 봐온 수많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회색빛 세상을 '살아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빛상모>의 배경은 인도 최대의 도시 '뭄바이'다. 일과 돈이 있는 '기회의 땅'이라 불리며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몰려든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인산인해에 휩쓸리며 사느라 그 도시는 시간을 앗아가는 도시라는 이명을 얻었고, 누군가에겐 매일같이 떠나고 싶은 지긋지긋한 공간이 된다.
영화는 시선을 한 층 깊숙이 들어가 '도시'에서 '인물'에 집중해본다. 영화의 세 주인공은 모두 한 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는 프라바, 파르바티, 아누라다. 세 여성은 저마다의 고민을 떠안고 있다. 프라바는 독일에 가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파르바티는 서류에 밝지 않았던 탓에 졸지에 무단 침입자가 된 상황이며, 아누는 자국 내에서 소수인 무슬림을 종교로 믿는 남성과 사랑에 빠져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비밀스런 밀회를 이어나가는 상황이다. 영화는 입바른 돌파구를 '제시'하기보단 '응원'하는 시선으로 그들의 일상을 관조한다.
야경의 감성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회색빛 현실만을 주구장창 비추는 1부와, 현실적인 배경이 등장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2부가, 각각 파트마다 그 접합이 흥미롭다. 프라바의 남편이 등장하는 것이, 마치 신화적인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신비스럽다. 성과 속의 양 측면에서 고루 완성도를 보이기란 쉽지 않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흥미로운 지점은 어둠과 작은 빛의 관계를 집중한 것에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다보면, 혁명과 같은 거대한 희망은 아닐지라도, 하루하루를 살아날 수 있게끔 해주는 작은 희망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살아가게끔 해주는 그런 작은 희망은 만약 온통 기쁨과 행복만으로 충만한 삶에서는 그 가치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다. 핸드폰으로 손전등을 켜면, 주변이 온통 환한 낮의 밖에서는 그 형체가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그걸 켜면 그 모습이 더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서 겪는 작은 희망들은 바로 그 핸드폰으로 켠 손전등 같다. 그러니까 그런 작은 희망들은, 역설적일 수도 있겠지만, 삶이 어둡고 팍팍해야 그 가치가 더 입증되고 증명되는 것일 테다. 어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어둠이 우리네 인생에 있어 불가피한 환경일 때, 하루를 살아가게끔 하는 반딧불과도 같은 작은 희망들은 그 가치를 드러낸다.
칠흑같이 어두운 한밤중 폰으로 손전등을 켜 닥터가 선물한 시를 읽어보는 프라바. 이 장면이 이 영화를 상징하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외로움을 순간 달래줄 수 있는, 작은 빛으로 비춘 노트에 실려 있는 시. 작은 빛 혹은 작은 희망은 밝디밝은 낮에는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 작은 빛들은 어두워야 눈에 띈다. 엔딩에서도 그렇다. 둘 앞에 드디어 시아즈를 소개하는 아누. 어두운 밤에 유일하게 불 켜진 야장.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네 인물. 그리고 두 단계를 거쳐 멀어지는 카메라. 그곳은 어둠 속의 촛불이다. 작은 빛은 어둠이 닥쳤을 때 그 존재를 드러낸다. <우빛상모>는 혁명의 영화가 아니다. <우빛상모>는 작은 전진의 영화일 것이다. 올해 최고의 엔딩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엔딩만으로도 이 영화를 한 층 더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