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 쿠바>는 60년대 쿠바의 모습을 3부 구성이라는 다각적인 면을 통해 소개한다. 그러나 단지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스스로를 하나의 존재, ‘쿠바’라는 유기체처럼 느끼게 한다.
1부는 마치 의인화된 ‘쿠바’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사람 한 명 없는 황량한 풍경들,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나, 쿠바’라는 목소리는 관객을 이 낯선 세계로 이끈다. 이어지는 공간은 쿠바의 가장 높은 곳처럼 느껴지는 백인 부자들의 파티장. 술과 음악이 넘치는 파라다이스 같은 공간이다. 그러나 영화는 곧 시선을 돌린다. 그 파티에서 일하던 여성 ‘마리아’가 거주하는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 낯선 이에게 너나 할 것 없이 구걸을 하는 아이들. 화자인 '쿠바'는 다시 말한다. 당신들에게 나는 카지노, 바, 호텔이겠지만, 이 아이들과 노인의 손도 역시 나라고.
2부는 노인 '빼드로'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사탕수수를 재배하던 그는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사탕수수를 키우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피와 땀이 깃든 그 농장은 한순간에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라는 자본가의 손에 넘어간다. 소중한 땅을 자본주의에 넘길 수 없었던 그는 자식들을 놀러 보내고, 밭을 몽땅 불태운다. 느껴지는 그의 분노, 울분, 슬픔. 불길은 그의 절망이자 최후의 저항처럼 보인다.
3부는 청년 '엔리께'의 이야기다. 거리에서 여성의 희롱을 막고, 선전 영상을 상영하는 자동차 극장에 화염병 테러를 감행하는 인물. 부패한 경찰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지만,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각성한다. 이후 그는 시위를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고, 마침내는 제물처럼 스스로 죽음의 공간으로 걸어들어가 시위의 도화선이 된다.
특히 3부에 이르러 영화는 감정의 에너지를 가장 강렬하게 분출한다. 행진하는 군중들을 물대포로 진압하는 장면은, 대체 어떤 결심으로 찍은 걸까 궁금할 정도로 ‘투혼’이 느껴진다. 엔리께의 관을 운구하는 군중들을 위층에서 지켜보던 노동자들이 이내 창문에 쿠바의 국기를 게양하는 장면이나, 곳곳에서 쫓기되 쓰러질지언정 무릎 꿇지 않는 혁명군들의 모습은 감정적인 강렬함을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는 상당히 경직되어 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무엇보다도 ‘선전물’의 인상이 강하다. 이야기와 공간의 볼륨이 너무 크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예술적 성취보다는 메시지를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 메시지를 원하면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치라는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