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건장한 체구의 성인 남성이었다면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정신없이 도망쳐나오는 인물이 반삭의 피투성이 소녀라면 전자의 경우보다 관객은 훨씬 움찔하게 된다. 그만큼 <마터스>의 오프닝이 강렬하다. 이후 다큐멘터리스러운 씬들이 지나고 나면 관객은 본작이 어떠한 '집단'의 실체를 밝히는 이야기의 영화이진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면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주인공의 복수극이 펼쳐질 뿐이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줄 알았던 루시가 도중 사망하고, 조연인 줄만 알았던 안나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안나는 지하의 공간을 발견하고, 영화는 이제껏 가보지 않았던 이야기로 진격한다. 전환은 강렬했고 기세도 좋았다. 다만 그로 인해 앞의 이야기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듯한 감은 있다.
깨달음과 천국과 같은 것들이 '실존한다'는 뜻이, 그것이 '현세'에 실존해 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자가 순교할 수밖에 없다면, 현세에서 맹위를 떨치는 종교 집단들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마터스>는 종교를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적인 입장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극단적인 표현에 반해 주제는 제법 흥미롭고도 심도 있는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다만 그 표현이 주제를 지울 정도로 강렬했던 탓에 영화 내적으로의 균형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괴한 이미지의 목적이 '불쾌함'을 조달하는 것이었다면 성공한 것이었겠지만 본작의 주제는 그게 아닐 테니까. "인체박물관" 장면은 황당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으니.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관객이 영화에서 무엇을 먼저 마주하게 될지를 감안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복수극의 논리로 내내 진행했었다면 차라리 이렇게 산만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본작은 더 고어로 갔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