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성 없이 돈 자루를 떨어뜨리고 열차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란다. 게리 쿠퍼의 몸이 입혀진 인물임에도 '링크 존스'의 모습에선 주인공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가 없다.
시네마스코프 화면비 속에 담기는 모든 이미지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드넓은 평원과 대자연, 기차와 역마차를 담는 프레임, 또한 수평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인물의 모습을 기다란 스코프 화면으로 담는 방식이 매우 놀랍다. 숏을 낭비하는 일을 최소한으로 하여 인물들을 프레임 속에 가득 채우는 경제성 또한 인상적이다.
실내에서 친척을 만나, 자신의 과거가 일깨워지는 시퀀스는 그 촬영에 있어서 교과서적이었다. 조명의 유동적인 사용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거나, 공간이 계속해서 넓어지고 새롭게 확장되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구도의 재배치는 이 순간 자체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을 주기에 적절하다.
서부극에서도 이상한 영화가 많지만,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정말 이상하다. 선생을 구하러 마을로 왔다는 주인공이지만 그가 살던 곳은 마지막까지 화면 안에 드러나지 않는다. 어리숙해 보이는 주인공이 사실은 도적의 일원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과연 저것이 링크 존스가 이 마을로 온 진짜 이유였는지도 의심스럽게 된다. 대단히 깔끔한 완성도의, 초반 '열차 강도 시퀀스'가 있는가 하면 잔디밭에서 벌이는 둔탁한 '개싸움'도 들어있다. 살생을 일삼던 과거를 반성하며 새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던 주인공이었지만 자신으로 인해 또다시 죽게 된 '샘'에 의한 대단한 아이러니도 있다.
<역마차>의 주인공 링고 키드는 세상 안으로 들어와 사건을 해결한 후 세상 밖으로 나간다. <수색자>의 주인공 이든은 집으로 들어오며 시작하지만 여정이 끝난 후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서부의 사나이>의 링크 존스는 다시금 세상으로 들어간다. 과거를 청산하려 노력했던 링크 존스는 아마도 또다시 그 굴레에 갇혔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