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뚜렷한 횃불. 뉴 할리우드의 효시로 남은 까닭은 분명했다.
뉴 할리우드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1960년 히치콕은 <싸이코>라는 빛나는 흥행 걸작을 만들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싸이코>의 영향을 분명히 받은 작품처럼 보인다. 다만 뉴 할리우드의 시대를 처음으로 열어젖혔다는 평을 듣는 영화답게 <싸이코>라는 '이전'과 전혀 다른 표현을 해 내겠다는 듯 그 유명한 오프닝을 정반대로 그려낸다. 제작 규범의 완화로 인해 <싸이코>와는 달리 여성의 나신을 적극적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또한 관음의 시선으로 은밀히 침투하던 <싸이코>와는 달리 이 영화는 그 방의 인물을 익스트림하게 클로즈업한다. 이 영화는 분명 하나의 분기점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이상할 정도로 즉흥적이다. 마치 이 영화는 각본이 없는 것만 같다. 즉흥적인 여정을 보여주는 인물들은 영화사에 널렸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선 단지 그런 차원이 아닌, 주인공들의 여정이 직진이 아니라 단지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알고 있기에, 놀라울 정도로의 현장감이 느껴진다. 다큐멘터리의 화법 또는 로케이션으로 만들어내는 현장감과는 다른 차원이다.
분명 살인과 절도 등의 죄를 지은 이들이지만 어떤 이들은 그들을 빛처럼 본다. 분명 누군가에게 악인이었지만 그들은 누군가를 위해 의로운 도적질을 감행하려 한다. 그들은 단지 그 혼란한 순간들의 대명사였을 뿐이다. 세상은 이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듯 청춘들을 학살하는 어느 기성세대들을 영화의 마지막으로, 주인공들의 행적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는 직감을 가지게 한다.
클라이드의 발기부전으로 문제를 겪는 에피소드라거나 충격적일 정도로 주인공들을 학살하는 엔딩, 우울하고도 나른한 분위기도 기억난다.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던 페이 더너웨이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