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야기해야 될 것 같다. 나는 하워드 혹스를 숭배하지는 못하겠다. 만신전에 오른 거장들을 모두 좋아한다는 것은 일견 기만적인 태도가 아닐까. 이와 비슷하게 나는 히치콕이나 브레송을 숭배하지는 못하겠다. 그들의 작품들을 훗날 다시 보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지금은 그렇다.
내가 혹스의 영화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스의 영화에선 인물들이 서사의 필연적인 결말을 향해 소비될 뿐이라는 인상이 있다. 여타 감독 중에서도 이러한 점을 가진 경우가 있지만, 이는 물론 감독의 단점이 아니라 특징일 것이다. 나는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상술한 생각이 있음에도 이 영화는 순수한 매력이 있다. 이상적인 연대를 꿈꾸는 영화의 서사는 매력적이다. 아버지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악당을 상대하려는 샤스타, 친구 터스카로라를 구하려는 코르도나, 배신자를 찾으려는 맥낼리 이 세 명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허나 서로간의 신뢰가 쌓여가며 여성, 유색인종, 늙은 백인 남성의 연대라는 구도가 견고해진다.
기차와 기병의 박력 넘치는 운동성, <스파이 브릿지>가 절로 떠오르는 후반부 인질 교환 장면에서의 서스펜스, 넘치지는 않지만 구두점을 확실하게 남겨주는 몇 번의 총격전 장면같이 감독의 연출적 능력이 눈에 띈다.
'남북전쟁'이라는 한 나라 안에서의 전쟁인 케이스를 다루기에 적군의 얼굴이 낯이 익는다던지, 적군과 문제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것에서 느껴지는 훈훈한 유머도 좋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부축당하는 존 웨인의 뒷모습으로 끝나는 영화의 엔딩은 서부극의 클리셰를 박살내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