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은 '시간의 흐름'을 테마로 한다. 정말 천천히, 날이 밝아오는 시간을 카메라는 흔들림 없이 담아낸다. 영화의 주인공 아레나스는 흘러간 시간을 거슬러 아버지가 떠났던 그때를 회상한다. <남쪽>은 시간이 지남에 따른 주인공의 성장을 다룬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남쪽>은 아레나스가 (스스로) 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 (시간이) 아레나스를 성장시키는 영화라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겠다. 감독의 전작인 <벌집의 정령>보단 구체적이고 선명하지만, <남쪽>은 거대한 내러티브를 함유하고 있는 영화가 아니다. 소설보단 시에 가까우며, 군데군데 미적으로 놀라운 이미지들은 시의 행간을 연상하게 한다.
<남쪽>은 그리움에 관한 영화다. 어거스틴은 남쪽 땅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지만, 아마도 그 이유가 고향 땅 자체를 증오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남쪽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아버지와 불화를 겪었고, 전쟁은 아버지를 승리자로, 어거스틴을 패배자로 만들었다. 백 퍼센트 본인의 의지로 고향을 나온 것이 아닌 어거스틴은 그래서 그때를 그리워하고, 그때의 사랑이었던 그대 로라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내내 좌절을 겪는다. 옛사랑 로라에게서 받은 편지엔 분노와 탄식과 반대가 담겨 있었고, 집을 떠나버리고자 정말로 나왔지만 잠을 자느라 기차를 놓쳐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외동딸 아레나스와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지만, 그마저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패배자인 채로 변두리로 온 어거스틴은, 기어코 그곳에서도 패배자 인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남쪽>은 권태와 고독, 그리고 노스탤지아를 탐구하는 영화다. <남쪽>에는 어린 아레나스의 시선에선 차마 닿을 수 없는, 아버지 어거스틴이 신음하는 고통의 시간들이 담겨져 있다. 쉬이 놓기 어려운 현재의 가장이라는 책임, 미결로 남아있는 과거의 사랑. 아버지는 육신의 상태에서는 자신이 기억하는 이상향으로서의 고향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기억하는 고향은,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에.
이토록 매혹적이고도 환상적인 멜랑콜리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