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개인적으로 인생영화이기도 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비교가 자주 되곤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의 생각은, 전혀 다른 영화이며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스.오는 점차 멀리 뻗어나간다. 이 영화는 점점 안으로 들어간다. 두 영화의 화술은 정반대이다.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보고서도 쓴 글에 있지만
타르코프스키(이하 탈콥)는 가장 깊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내는데 영화 역사상 가장 전투적으로 천착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굉장히 관념적인 대사와, 인간 본질을 사색하는 철학적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영화의 '서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탈콥은 영화를 문학의 기능으로만 소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SF 장르에서의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호러의 감정과 자주 결부되곤 한다. 이 영화에서도 분명히 호러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들이 (특히 전반부에) 있다.
분명 탈콥도 이를 의도했으리라.
영화는 끊임없이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누군가의 관계에서 'one of a kind'인 그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단지 그의 겉모습만을 사랑하는가?
이와 관련해 스나우토의 재미있는 대사가 다음과 같다.
"통풍구에 종이를 달아둬요. 밤에 들으면 나뭇잎 소리 같거든."
조금만 멀리 가보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구절이 생각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과연, 존재는 인식으로 '완성'되는가?
인간은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의 본성을 응시하게 된다.
스나우토의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이다.
"우리에게 우주를 초극할 야망 따윈 없소.
지구의 영역을 우주로 확대할 뿐이지.
더 이상의 세계는 필요 없소.
자신을 비춰 볼 거울이 필요할 뿐이오.
열심히 추구했지만 실패로 끝난 거요.
우리에게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목표를 좇다니 우습지 않소!
인간에겐 인간이 필요해요."
인간은 우주의 영역을 지배하지 못했다.
우린 단지, 지구의 영역을 멀리 확대시킬 뿐이었다.
인간에겐 인간이 필요하다.
하리는 허상으로 태어났다.
허상은 점점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허상이 무엇을 가져야 비로소 허상에서 벗어나
'실체이다' 판단할 수 있는가?
허상의 하리는 괴로워한다.
크리스는 지구에서 그리움을 갖고 있었다.
얼굴도 잊은 어머니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이다.
어머니는 과거의 형상으로 남아 있다.
크리스는 우주에서 비로소 구원의 위로를 받는다.
인상적인 엔딩 장면이 이어진다.솔라리스는 크리스의 고향을 생성하기에 이른다.
이성과 냉정에 취해 아버지에게 들었던 '인간성의 부족.'
크리스는 솔라리스 안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죄의식에서 해방된다.
의문이 든다. 결국 크리스는 지구로 돌아가지 않고 솔라리스에 머물렀다.(적어도 영화의 장면 안에선, 그렇게 보는게 합당해 보인다.)
이 결말은 비극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난 차마 탈콥의 영화를 비극적인 엔딩으로 볼 자신이 없다.
인간은 기댈 곳이 필요하며,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다.
탈콥은 이를 확인시켜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