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 · 피터 위어 · 미국
후보 · 아카데미 감독상
트루먼 쇼 포스터
103분 · 코미디 · 드라마 · 15세 이상 · 출연 짐 캐리, 로라 리니, Noah Emmerich, 나타샤 맥켈혼 · 음악 Burkhard von Dallwitz · 촬영 Peter Biz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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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버뱅크는 작고 조용한 섬마을에 사는 평범한 세일즈맨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범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촬영용 조명등이 떨어지고, 어렸을 적 자신이 익사를 직접 목격했던 아버지가 살아오고, 또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는 등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나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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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자만이 끝까지 행복하다.

희극적인 이미지가 강렬한 주연 배우 짐 캐리 덕에 본작의 이미지 또한 유쾌한 무언가로 기억되곤 하지만, 분명 <트루먼 쇼> 에는 오싹한 정서가 흐른다. 그 오싹함은 거대한 시스템에 무방비로 대항하는 꼴이 된 한 명의 유약한 인간을 응시하고 있다는 직감을 관객이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아버지(역할을 한 배우)를 우연히 트루먼이 마주치자 그 주위의 모든 인물들이 동시에 '비상 상황'을 선포하듯 트루먼을 주목하는 장면이나, 모두가 청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듯 소음이 생기자 동시에 귀를 막는 "주민"들. 물론 본작 이후지만 <매트릭스>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된다.

트루먼이 아버지와 재회하는 장면에서도 그 기이함은 느껴진다. 누군가에겐 평생 그리워했던 존재와 재회하는 장면임에도, 스태프들의 관심은 온통 그 순간을 어떻게 더 극적으로 묘사할 것인지에만 집중되어 있다. 재회의 순간 그들이 눈물 흘리고 박수친 까닭은 트루먼이 아버지를 찾아서가 아닌, '이 극적인 장면'을 이리도 아름답게 담아낸 스스로에 대한 감동, 그로 인해 올해 최고 시청률까지 기대해 볼 수 있겠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플롯에 대한 궁금증도 있다. 어쩌면 플롯을 이렇게 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쇼라는 것을 관객에게 처음부터 알리지 않고, 관객을 트루먼과 사실상 같은 위치로 놓은 뒤 영화의 중반쯤 이 세계에 대한 반전을 안겨 이야기를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해 가는 식으로. 하지만 감독은 어쩌면 장르적으로 가장 임팩트를 날릴 수 있는 이러한 플롯을 꾀하지 않고 영화의 시작부터 이 세계의 진실을 관객에게 모두 알리고선 시작한다. 왜일까. 시작부터 이게 쇼라는 것을 밝히는 본작. 그래서 우리는 이 이상한 처음 보는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게 된다. 트루먼이 이상함을 느끼고 세계를 탐구할 때, 우린 그 트루먼과 함께 세계를 탐구한다.

이 세계의 진실은 관객 모두가 알고, 씨헤이븐의 모든 인물들이 알고 있으며, 오직 트루먼만 알지 못한다. 이것은 (관객은 알고 인물은 모르는 상황인) 서스펜스를 세팅하는 그것 너머의 세팅이다. 관객도 '트루먼 쇼'의 시청자가 된다. 이것은 윤리의 문제다. 극중 '트루먼 쇼'를 보는 시청자들은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즐거움으로 그것을 본다. 그렇지만 어쩌다보니 그들과 비슷한 형태로 트루먼 쇼를 보고 있는 관객들은 안타까움의 감정으로 그것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100% 즐기지 못한다. 우리는 제발로 극장에 와, 시작부터 이 세계가 쇼인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심지어 시청자들과 함께 수많은 '훔쳐보기'의 숏들로 트루먼을 관찰하면서, 트루먼이 안타깝다며 동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트루먼을 바라보며 웃고 떠드는 극중의 시청자들과 나는 다르다."는 도덕적 우월감에서 기인한 것일까. <트루먼 쇼>는 '트루먼 쇼'를 보는 시청자들과 트루먼을 조종하는 방송국 인물들을 비판한다. 그와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관객의 위선도 비판한다. 물론, 관객은 대부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설정 자체가 우화스러운 <트루먼 쇼>는 흥미로운 역설로 들어차 있다. 트루먼의 직업은 '일어날 수도 있는' 사고를 위한 보험을 판매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당사자인 트루먼은 사고를 절대 당할 일이 없는 인물인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이들은 이 모든 것이 '진짜'라고 홍보하지만, 다른 것을 차치하더라도 트루먼이 어렸을 적 탐험가의 꿈을 꾸었을 때부터 그 아이의 꿈을 짓밟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트루먼의 미래를 '조정'한 그들의 행동은 도저히 '진짜'라고 칭할 수는 없겠다. 다만 흥미로운 지점은 트루먼의 기억이라는 지점이다. 트루먼에 대한 모든 기록이 남아 있고 그에 대한 모든 각본이 명확히 있는 방송사이기에 많은 것을 조작할 수 있지만, 트루먼 머릿속 기억에 대해선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흥미롭다. 그것은 이미 벌어진 과거만은 조작할 수 없다는 현실이자 은근한 희망이기도 하다.

트루먼이 세상의 끝에 당도한 후 배에서 내려 계단을 향할 때의 모습은 미묘하게 물 위를 걷는 듯한 구도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이는 다분히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트루먼의 시점에서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세계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그 곳에서 더는 '인간'으로서 있지 않고 '신'이라는 존재로 진화해야만 가능한 일일수도 있겠다. 그리곤 그 신에게 또 다른 '신'이 말을 건다. 성경을 소재로 한 창작물에서 흔히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구름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씨헤이븐의 설계자니 크리스토프는 어쩌면 이 세계관의 신이기도 하다. "자네는 이 세상에서 나가지 못해." 라는 크리스토프에게 자신의 명대사로 받아치며 세상을 탈출하는 트루먼. '트루먼 쇼'는 아마도 방송 역사상 최고의 엔딩으로 끝이 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트루먼 쇼>의 엔딩이 희극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트루먼 쇼'의 엔딩을 본 시청자들은 금세 싫증이 난 채 채널을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는 아마도 지금껏 벌어들인 명성과 부로 인해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트루먼은 진짜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짜 세상에서 만난 로렌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진짜 세상마저 가짜인 건 아닐까 의심하며 불안증세와 우울감에 시달리진 않을까?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결말은 대체로 비극이다.

기만을 알아차린 순간 비극은 시작되기에, 어쩌면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자만이 끝까지 행복하다.

2026.4.18 롯데시네마 수원 2번째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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