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같은 영화들의 플롯 장난질이 '혼돈'을 위함이라면 <펄프 픽션>의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혁신'을 위함이다.
이 영화 전체에서 그렇지만, 특히 빈센트&미아 씬에선 왜 이리도 청춘의 자유로움이 느껴질까. 정말 자유로운 영화의 순간들,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라는 정말 멋진 두 배우, 색감, 음악. 이 씬에서 느껴지는 열정처럼 살고 싶다.
우연히 만난 마르셀러스와 부치는 우연히도 들어간 가게의 사장의 변태성에 희롱당한다. 인물의 자존심은 짓밟히고 관객의 예측은 부서진다. 뭐 하나 예측이 되는 것이 없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였던 빈센트는 부치의 이야기의 중간 부치의 에피소드에서 어이없이 죽는다. 허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빈센트는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곤 영화의 엔딩까지를 책임진다. 마치 죽은 자를 다시 끌어올린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펄프 픽션>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아나키즘 그 어딘가의 영화 같다. 에피소드마다의 기승전결은 완벽하면서 그 시간 순서는 제멋대로인 플롯은 이를 맞추는 재미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서사의 상식을 부수는 흐름을 마주하는 놀라움이 크다. <펄프 픽션>은 B급을 지향한다. 이 영화의 저렴한 대사와 선곡들은 음지의 것들이다. 이 영화는 스스로를 고상한 양 가장하는 포장지를 만드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허나 동시에 빈센트와 줄스의 에피소드를 통해, 구원을 믿는 자와 우연을 믿는 자의 마지막을 대비함으로서 우연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믿음의 순수함을 말하는 따뜻함도 보여준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것처럼도 느껴지는 사무엘 잭슨의 쫄깃한 명연도,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떠나는 부치와 파비엔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완벽한 해방의 감정도, 환상적인 대사를 통해 위엄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항문 시계 이야기'도, 이 영화의 생명력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인상적인 순간이다.